제국의 군인 하지 장군

2025-08-13

1893년, 미국 일리노이주의 어느 고아원에 소년이 들어왔다. 세례명은 요한(John)이었고 이름은 하지(Hodge·사진)였다. 중간 이름이 갈대(Reed)인 것으로 보아 거친 성격을 누그러트리려고 보모가 지어 준 이름인 듯하다. 싸움을 잘했으나 빗나가지 않고 일리노이 주립 대학 건축과에 들어가 학사장교(ROTC)에 지원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룩셈부르크 전선에서 싸웠고, 전쟁이 끝나자 미시시피 주립대학 학군단장으로 복무했다. 그 뒤 전투기 조종사 자격을 딴 것을 보면 성실한 장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섬에 배속되어 사단 창설 임무를 맡았는데, 그 이름이 아메리칼사단(Americal Division)이다. 그는 밀림전의 용사였다. 부상을 겪고서도 예편하지 않고 오키나와 상륙 작전의 성공과 함께 중장으로 진급하여 24군단장 자격으로 한국에 상륙하였다. 당시 그의 직책은 24군단장 겸 조선점령군 사령관이었다.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이나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모두 점령군이었다.

하지가 제국의 전사인지 한국 재건의 조력자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미국의 충실한 군인이었고, 한국의 재건과 독립에 진심으로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군인으로 좀 괴벽스러워, 군단 지침으로 지휘관은 예하 장병의 이름을 기억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무리는 엄벌에 처하고, 머리는 5㎝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시달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하지는 “내가 싫어서 그만둘 수 있는 직책이었다면 연봉 백만 달러를 준다 해도 이 자리를 맡지 않을 것”이라며 장차 남북에서 일어날 내전을 걱정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차피 피와 눈물과 돈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내일 광복절을 맞으며, 문득 한 제국의 무장을 회상하게 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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