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슈멜츠 파타고니아
아시아태평양 총괄 인터뷰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기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명령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인권이사회(UNHRC) 등 국제기구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여기에 ‘ESG 무용론’을 넘어 “ESG는 악마”라고 주창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미 정부 운영에 관여하면서 지난 몇 년간 대세로 떠오른 글로벌 지속가능성 흐름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파타고니아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브레멘 슈멜츠(53) 파타고니아 아시아태평양 총괄(파타고니아코리아 대표 겸직)은 이런 우려를 당당한 미소로 날려버렸다. 그는 “우리는 싸움꾼”이라며 “환경을 파괴하는 그 어떤 공격에도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랩코리아 주최의 ‘파타고니아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차 방한했다. 국내 비콥(B-Corp) 기업과 1%포더플래닛(1% for the Planet) 이니셔티브 참여 기업들의 현황을 공유하고 네트워킹하는 자리였다. 이날 슈멜츠 총괄은 “우리가 믿는 ‘환경보호’의 가치를 훼손하는 그 어떤 형태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논쟁, 두렵지 않다”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소위 ‘착한 기업’의 대표 주자로 알려졌다. 슈멜츠 총괄은 “파타고니아는 착한 기업이라기보다 ‘환경보호를 위한 전사’에 가깝다”고 했다. 파타고니아는 단순히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거나 판매 수익을 환경을 위한 활동에 기부하는 것만을 환경보호 활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시위에 나서거나, 기업은 물론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도 불사한다.
파타고니아의 고소 대상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포함됐다. 파타고니아와 트럼프 대통령의 악연은 1기 행정부 때 시작됐다. 슈멜츠 총괄은 “트럼프 정부가 처음 출범한 2017년부터 소송을 시작했다”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국립공원을 축소하거나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사냥 규제를 완화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생물다양성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타고니아는 ‘대통령이 당신의 땅을 훔쳤다(The President Stole Your Land)’라는 메시지를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걸고 대통령의 유타주 국가기념물 지정 면적 축소 조치를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는 상대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슈멜츠 총괄은 “고난이 예견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정말 괜찮다”며 웃었다. 이어 “우리는 늘 신념에 따라 싸워 왔고, 해야 할 싸움이라면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기업 활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우리 행동의 기준일 뿐, 정치엔 전혀 흥미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고, 그 가치에 준하는 일이라면 두려움 없이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옷을 파는 거대 비영리 단체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상업 브랜드이기 이전에 ‘환경 운동’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슈멜츠 총괄은 ‘고객과 역사’라고 답했다. 그는 “모든 브랜드가 파타고니아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 창출과 환경 보호, 두 가치가 충돌할 때
파타고니아의 철학은 본사를 넘어 한국·일본 등 전 세계 파타고니아 지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파타고니아코리아 역시 국내 환경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통상 파타고니아처럼 연매출 10억 달러(약 1조4500억원) 규모의 기업이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 등과 협업할 땐 기업 측에서는 재정 지원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요구로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메시지는 삭제되거나 리스크 관리 탓에 본질적인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는 정작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파타고니아코리아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제주 지역의 남방돌고래 보호를 위한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와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핫핑크돌핀스는 환경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기업은 물론 정부, 지자체는 물론 비영리단체 활동에도 거침없이 반대 목소리를 내거나 시위를 연다.
수익창출과 환경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가 충돌할 때도 있다. 슈멜츠 총괄은 “파타고니아 역시 완벽하지 않다”며 수긍했다. “우리는 창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환경보호를 위한 과정에 있다”면서 “환경보호라는 미션에는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우리도 많은 실수를 범해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과오를 숨기거나 ‘이쯤 하면 됐다’고 변명하지 않고 계속해서 환경보호라라는 길 위를 걷는 것이죠.”
슈멜츠 총괄은 파타고니아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87)의 조언을 소개했다. “진짜를 만들라, 거짓되게 하지 말라(Make it real, Don’t fake it)”는 짧은 문장이다. “제 말을 믿으세요. 소비자가 옳은 방향에 돈을 쓰면, 세상은 바뀔 겁니다. 비즈니스는 돈을 따라가고, 정부는 비즈니스를 따르니까요. 기업 관계자들은 완벽함에 얽매이지 마세요. 도전받는 것을 피하지 마세요. 진실하게 활동한다면 세상은 바뀔 겁니다. 바로 우리가 고객들과 지금껏 만들어온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