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사업 영역별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적 정의가 마련돼야 각 사업 영역에 대한 진입 규제와 행태 규제, 나아가 내용 심의·금지 행위·이용자 보호까지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18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미디어산업정책 포럼의 '방송과 OTT, 경계와 책무'에서 “OTT가 무엇인지, 그 사업자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 없이 OTT를 규제하겠다는 하위법을 만드는 것은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규제 형평성과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사업 영역별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진입 규제와 행태 규제, 이용자 보호까지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특히 규제 정의와 거버넌스의 선후 관계를 지적하며 “거버넌스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정의를 따라가는 방식은 엉킨 실타래를 더 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OTT의 법적 정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업자별로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기 어렵고, 역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해 국내 기업만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법적 정의가 선행돼야 이후에 진입 규제, 금지 행위, 내용 심의, 이용자 보호 같은 세부 규율도 체계적으로 마련될 수 있다”며 제도 설계의 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방송통신발전기금 부과, 망 사용료, 저작권 보상 제도가 법적 정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는 “OTT에 부담금을 부과하려면 평등 원칙과 비례성 원칙을 충족해야 하며, 과도한 규제는 인터넷 상호접속 원리에 반해 소비자 효용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극장 중심 규정을 전제로 한 현행 저작권 제도도 OTT 시대에 맞게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방송과 OTT 간 규제 불균형이 심화될 경우 국내 사업자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창작자 권익도 침해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단편적 규제나 부담금 논의가 아니라, 혁신과 형평성을 함께 고려한 장기적 법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도 제도 정비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본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은 “경쟁 규제나 사후 규제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기존 방송 규제는완화하는 방향이 맞다”며 “해외 사업자는 수익 이전 회계 처리 등을 통해 기금 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만큼 역차별 우려가 있는 만큼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디지털세 부과 논의와 연계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거버넌스가 정리되며 방송 미디어 법제도 빠르게 정비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