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확보를 위한 표 대결을 앞둔 고려아연이 궁지에 몰렸다. 최후의 승부수였던 '유상증자'가 금융감독원이란 큰 벽에 가로막힌 사이 경영권을 노리는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은 지분을 늘리며 점점 더 고려아연을 압박해오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MBK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총 2920억원 규모' 고려아연 지분 1.36%(28만236주)를 장내매수를 통해 확보했다.
앞서 영풍·MBK 연합은 지난달 14일 완료된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지분 5.32%를 확보한 바 있다. 여기에 이번 장내매수 지분 1.36%를 더하면 이들 연합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39.83%까지 늘어난다.
의결권 기준으로는 과반에 육박하는 지분율 45.4%로 연말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상증자 '승부수→무리수' 전락···"충분히 예상치 못했다"
MBK가 지난달 18일부터 총 15거래일에 걸친 지분 매입을 통해 경영권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사이 고려아연은 위기에 봉착했다. 승부수로 던진 유상증자 카드가 무리수로 전락하면서 궁지에 몰린 것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고려아연은 '주당 67만원'에 총 373만2650주의 신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자금력에서 앞선 사모펀드 MBK에 맞서 빚지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는 고육지책으로 유상증자를 택한 셈이다.
하지만 "전 국민 유상증자를 통해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명분은 공감을 얻지 못했고, 금융당국은 곧장 제동을 걸었다. 고려아연을 지지하던 여론의 흐름도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표 싸움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승부수는 유일하게 앞서던 '명분'마저 퇴색케 하는 모양새다.
"기존 주주들과 시장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고 반발하던 MBK가 이번 지분에 대해 "시장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자유재량 매매' 방식으로 매수했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금융감독원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면서 '철회'와 '재추진' 사이에서 고민이 깊다.
고려아연 이사회 사외이사들은 지난 주말 일반공모 유상증자에 대한 시장 반응과 전문가 의견을 공유하고 향후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르면 오는 13일 이사회를 열고 철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3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대상 콘퍼런스콜에서 "긴급하게 결정했는데, 추진 당시에는 충분히 예상치 못했다"며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무겁고 받아들이고 있다"며 철회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투자증권·한국타이어 '우군 이탈'···지분 격차 5%까지 벌어져
고려아연이 금감원에 막혀 지분 확보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동안 최윤범 회장과 영풍·MBK 연합이 지분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영풍·MBK 연합이 공개매수와 추가 매수로 지분율을 39.83%까지 끌어올리는 동안 최 회장 지분율은 우호세력이 이탈하면서 감소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지분 0.8%(15만8861주)를 모두 처분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최윤범 회장의 친분으로 인해 그간 고려아연 측 우군으로 분류돼 왔다.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공개적으로 고려아연을 지지했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도 지본 0.7% 중 일부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한화그룹을 제외하고는 현대자동차와 LG화학 등은 말을 아끼며 '중립' 입장을 유지하는 분위기다. 향후 백기사 이탈이 더 이상 없고, 모두 최 회장 편을 들어준다고 해도 약 34%로 추정되는 최 회장의 지분율은 영풍·MBK 연합에 5%가량 뒤처진 상황이다.
MBK 연합은 최대한 빨리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표 대결을 벌여 이사회를 장악한 뒤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는 계획이다. 임시 주총은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1월께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