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안전핀을 뽑을 수 있는 수류탄.”
미국 백악관 내부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보수 진영 인플루언서인 로라 루머(32)를 이렇게 빗댔다. 통제 불가능하고 치명적인 존재란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루머가 트럼프의 내각 인사를 비공식적으로 감별하고 있다”며 “공식 직함 없이도 실세로 활동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3월, 루머가 X(옛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스럽지 않다고 지적한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12명을 언급한 뒤 이중 알렉스 웡 등 6명이 해임됐다고 NYT는 전했다. 당시 루머가 트럼프 대통령과 인사 관련 면담도 가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루머의 영향력에 대해 부인했지만, 논란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실제 루머의 영향력은 남다르다. 그의 X계정을 따르는 팔로워만 약 170만명으로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한때 트럼프 진영 내에서 반기를 드는 인사를 ‘RINO(이름만 공화당원)’로 낙인찍으며 축출하는 역할을 맡으며 입지를 다졌다.
대학생부터 보수 진영…“트럼프 먼저”
유대인인 루머는 플로리다의 배리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며 반이슬람 성향의 보수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캠퍼스 청년 공화당 지부 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비밀 탐사보도 매체 ‘프로젝트 베리타스’에서 고용 제안을 받아 탐사보도 경력을 쌓으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반이슬람 메시지로 2019년까지 주요 SNS플랫폼 계정이 차단당하면서 미디어 영향력을 잃을 위기가 찾아온다.

그때 루머는 직접 정계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루머는 2019년 의회 출마를 준비하며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로 플로리다 21 지역구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로이스 프랭클 민주당 후보에 20%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2022년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다른 지역구로 나갔지만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당시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의 지침 아래 금지된 계정 복구 조치와 영상 플랫폼인 럼블(Rumble)과의 계약을 계기로 영향력을 회복했다. “오바마는 무슬림”, “해리스는 흑인이 아니다”, “9·11테러는 내부자 소행”, “2020년 트럼프의 대선 패배는 부정 선거” 같은 자극적인 주장을 내세워 보수층 결집에 나섰다.

그를 신뢰하게 된 걸까. 지난 2023년 트럼프 대통령이 루머에게 직접 통화해 캠프의 공식 직책을 제안했지만, 결국 당 관계자와 고문 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루머가 선거 캠프에서 공식 직책을 맡지 않고 일부 일정에 게스트로 초대되고 있다”(폴리티코)는 보도가 여전히 나오면서 루머의 실세 영향력에 대한 후문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논란이 된 “이민자들이 주민 반려동물을 먹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배후에도 루머가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후에도 루머와 트럼프 대통령 간 관계는 깊어지고 있다. 루머는 “내 백악관 접근 경로는 트럼프”라고 말할 정도로 대통령과의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남자친구에겐 “트럼프가 먼저”라고 밝히는 가하면, 대통령과의 만남에 앞서 새 옷을 입기 위해 쇼핑을 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충성이 대단하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를 “훌륭한 여성, 진정한 애국자”로 추켜세우며 수차례 통화와 백악관 방문을 제안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그러나 공직 없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루머에 대해 공화당 내부에선 “통제 불가능한 그림자 권력”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과 성적 관계 의혹, 인종·종교 혐오 표현 등 논란이 당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