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캐나다 대사의 한복 외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6-19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창덕궁에서 고운 한복 차림으로 저희를 맞아주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인 1975년 한국으로 수학 여행을 왔다는 일본인 후지타 기요시(藤田淸司)씨가 2024년 7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일본 왕족 출신인 이씨는 1920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李垠)과 혼인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던 만큼 ‘일본과 한반도는 공동체’라는 정치적 선전에 활용하기 위한 정략 결혼의 성격이 짙었다. 그래도 이씨는 “한복 차림이 잘 어울린다”는 말에 행복함을 느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60세를 넘긴 1962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1989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한국에 살며 장애인을 위한 봉사 활동 등에 전념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그는 미국에 거주하던 1935년 선물로 받은 한복을 처음 입어본 뒤 한복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이후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에도 은은한 보라색과 와인색의 치마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그는 언젠가 세상을 떠날 경우에 대비해 지인한테 부탁해 보라색 비단으로 미리 수의를 지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91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이미 준비돼 있던 연보랏빛 수의를 입고 영면에 들었다.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부산에 한복을 입고 갓을 쓴 벽안(碧眼)의 중년 남성이 출현했다. 당시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 육군 제2군수지원사령부 사령관 리처드 위트컴 장군(준장)이 주인공이다. 이는 부산에 제대로 된 대형 병원을 짓기 위한 모금 활동의 일환이었다. 미군 장병의 월급을 1%씩 모으는 운동으로는 비용 충당이 어렵다고 여긴 위트컴이 직접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당시 그는 “한국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면 내 체면 따위야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기발한 퍼포먼스에 호기심을 느낀 미 언론은 위트컴을 “한국의 양반”(Gentleman of Korea)이라고 부르며 이를 기사화했다. 1982년 87세를 일기로 작고한 그는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는 생전 유언에 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지난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주한 캐나다 대사에 국내 언론의 시선이 쏠렸다. 캐나다로 향하는 이 대통령을 배웅하는 자리에 참석한 타마라 모휘니 대사가 감색 두루마기 한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모휘니 대사는 2023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K드라마 팬’을 자처하며 한국에 강렬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캐나다는 6·25 전쟁 당시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병력을 유엔군 일원으로 한국에 보냈다. 오늘날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캐나다 출신 데릭 맥컬리 장군(육군 중장)이 맡고 있다. 한국 곁에 캐나다와 같은 우방국이 있다는 점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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