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저학년을 넘어서면서부터 개학 날 나의 최대 관심사는 옆자리에 과연 어떤 여학생이 앉을 것인가였다. 누가 내 짝이 되어 1년 동안 같은 책상을 쓰게 될까.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친구도 몇몇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번 내 기대는 어긋났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상대방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대체 담임은 어떤 기준으로 짝을 정해준단 말인가! 할 수 없이 나는 대부분의 다른 남학생들처럼 책상 가운데에 칼로 줄을 긋고 책이나 공책이 조금이라도 넘어오면 짝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기만 하다가 졸업했다.
콧물 흘리던 화전민 집안 친구
한자 교육 탓 최종수 거꾸로 써
싸운 적이 더 많았던 숱한 짝들
이름 갖고 놀려 미안해 종수야

4학년 때였던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짝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내 짝은 화전민 정리로 오대산에 있는 분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온, 아직 누런 콧물을 질질 흘리는 친구였다.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주관식 모의시험을 보고 짝의 시험지와 바꿔서 채점하게 되었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시험지의 상단에다 자신의 이름을 수종최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답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두 빵점 처리를 한 뒤 그 사실을 즉각 큰소리로 선생님에게 알렸고 반 아이들은 웃음으로 답변했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이름은 최종수였으니까. 선생님에게 불려 나갔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녀석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종수의 할아버지가 한문을 배워 그렇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 까닭을 이해하기엔 우리는 아직 어렸다. 한동안 그 친구를 보면 수종최, 수종최… 놀리느라 바빴다. 그게 한자의 세로쓰기와 우종서(右縱書)의 영향이란 걸 훗날 소설가가 되어서 알았을 때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내 짝들은 당연히 모두 남자 녀석들이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으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모인 사내 녀석들은 장난치고 싸우고 선생님들에게 야단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짝이라고 해서 특별한 우정이 생길 리가 만무했다. 같은 나이지만 더 예민했던 여학생들은 아마 조금 달랐겠지만 남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춘기의 거친 바다를 건너가느라 허둥거렸다.
대관령에서 춘천으로 유학 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일인용 책상이라 아예 짝이라는 용어조차 사라지고 앞번호 뒷번호가 겨우 그 역할을 유지했다. 마음이 맞는 녀석들(어쩌면 패거리들)끼리 영화관·음악감상실을 찾아가거나 자취방 뒤편 담벼락 아래에 모여 잘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뻐끔거린 게 전부였다. 그러던 중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토요일 오후 고향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앉는 것이었다. 맙소사, 짝이 생기다니! 춘천에서 홍천까진 침묵을 고수한 채 뛰는 가슴만 달랬다. 버스가 홍천에서 횡성으로 향할 땐 용기를 내어 어디까지 가냐, 문과냐 이과냐를 물어보았다. 버스는 수시로 고개를 넘고 구부러진 길을 달려가고 있었기에 애를 써도 가끔 몸이 닿게 되는데 그때마다 서로 화들짝 놀랐다. 잠시 쉬어가는 횡성에선 터미널 옆 상점에서 산 귤을 먹으라고 내밀었다. 횡성에서 장평까지의 영동고속도로에서 우린 귤을 까먹으며 우리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도 모르는 토요일 오후의 짝은 검문병이 버스에 올라와 검문하는 장평에서 내렸다. 나는 어두워지는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 주었고.
이후 소설을 쓰겠다고 천방지축 돌아쳤던 대학 시절, 소설가가 되겠다고 아등바등 매달렸던 수원 시절에도 많은 짝이 길고 짧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가 떠나갔다. 즐거운 적도 많았지만 싸운 적은 더 많았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냐고 호소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소설까지 동원해 그 분노를 다스리느라 정작 해야 할 공부마저 게을리했다. 그런데…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과연 나는 내 짝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나 하고 분노했던가. 나로 인해 마음 아파했던 짝들은 과연 없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요즘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켜면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짝을, 어쩌면 패거리를 모집하느라 봄밤의 개구리들처럼 울고 있다. 깊은 밤 그 아우성을 듣고 보다가 문득 옆자리가 허전해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던 내 친구 최종수가 떠올랐다.
미안하다, 종수야.
김도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