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전쟁 승전가는 장자풍, 싱가포르 함락 노래는 발악" [김성철의 해방일기(10)]

2025-03-07

김성칠 교수의 일기는 1993년 〈역사앞에서〉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이 일기는 1945년 11월 29일자 뒤쪽부터 남아 있었는데, 그 앞의 일기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 김기목(통계학·전 고려대) 교수가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를 최근 찾아냈다. 1945년 8월 16일에서 11월 29일(앞쪽)까지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일기를 매주 토요일 원본 이미지를 곁들여 연재한다. 필자의 다른 아들 김기협(역사학) 박사가 필요한 곳에 간략한 설명을 붙인다.

10월 1일 비오다.

보례 서군이 숙(塾)을 기획한다기에 새로운 희망에 흥분을 느끼다.

이때까지 머리에 그린 모든 길이 다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더니 이제 숙 문제를 듣고 비로소 나의 참된 길이 열려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앞날의 어려움을 예견하면서도 전폭적 지지를 하여주는 것이 기쁘다. 교양(敎養)의 승리를 확신하고 일종의 법열(法悅)에 잠기다.

저녁엔 우연히 일본의 군가 이야기가 나와서 삼규가 그 여러 가지를 외워 있음에 새삼스러이 놀랐다.

일로전쟁 때 여순 함락 후의 노래와 이번 전쟁 초에 싱가포르가 낙성되었을 때의 노래를 비교해 보면 그 대조가 흥미롭다. 다 같은 승리의 기록인데도 전자는 포용성 있는 장자(長者)풍이 보이고 후자는 단말마적인 발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旅順開城約成りて、敵の将軍ステッセル 、乃木大将と会見、ところは何処水師営。

庭に一木棗の樹、 弾丸あとも著るく、くづれ残れる民屋に 今ぞ相見る二将軍。

乃木大将は厳かに、御惠み深き大君の、大詔伝うれば、彼かしこみて謝しまつる。

昨日の敵は今日の友、語る言葉もうちとけて、我は讃へつ彼の防備 彼はたたへつ我が武勇。

形正して言い出でぬ 此方面の戦斗に、二子を失い給ひつる 閣下の心如何にぞと。

二人の我子夫々に、死所を得たるを喜べり、我に武門の面目と、大将答え力あり。

両将昼食(ヒルゲ)共にして、尚も尽きせぬ物語、我に愛する良馬あり、今日の記念に献ずべし。

厚意謝するに余りあり、軍の掟に従いて、他日我手に受領せば、永く労り養はん。

さらばと握手懇ろに、別れて行くや右左、銃音絶えし砲台に、閃き立てり日の御旗。

여순 항복 조약을 위해 적장 스테셀과 노기 대장이 만난 곳. 그곳은 어디인고, 수사영.

마당에 한 그루 대추나무, 탄흔 뚜렷한 무너지다 만 민가에서 이제 마주 앉은 두 장군.

노기 대장이 엄숙하게, 은혜 깊으신 폐하의 조칙을 전하자, 적장은 황송하게 받드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 이젠 오가는 말도 허물없이, 우리는 칭송하네, 그들의 방비(防備), 그들은 칭송하네, 우리의 무용(武勇).

몸가짐을 가다듬으며 꺼내는 말, "이 방면 전투에서 두 아들을 잃으신 각하의 심경은 어떠신지요?"

"아들 둘이 각각 죽을 곳을 얻어 기뻐했고 우리 무인 가문의 영광이지요." 대장의 답변엔 힘이 있었다.

두 장군은 점심을 함께하며 한없는 이야기를 나눴네. "제가 아끼는 훌륭한 양마(良馬)가 있는데 오늘의 기념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후의에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겠소. 군의 절차에 따라 받게 된다면 두고두고 잘 돌보겠습니다."

정중하게 악수를 나눈 뒤 좌우로 갈라져 떠나는구나. 포성 멎은 포대에 일장기가 휘날리네.

[해설: 러일전쟁의 승전가 “수사영의 회견(水師営の会見)”의 가사다. 1905년 1월 러시아의 스테셀 정군이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장군에게 뤼순커우(旅順口)의 청나라 해군기지(수사영)에서 항복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노기의 두 아들이 이 전쟁 중 전사했고, 노기는 귀국 후 5만6천 명 전몰자에 사죄하는 자결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고 7년 후 메이지 천황의 장례일에 셋푸쿠(割腹)로 자결했다. 무사도(武士道)의 현대적 상징으로 숭앙받는다.]

이와 좋은 contrast.

勝ったぞ日本 断じて勝ったぞ、米英いまこそ撃滅だ、太平洋の敵陣営は根こそぎ崩れて声もなし。

東亜の侵略傲慢非道、今打ちこらす此勝利、隠忍自重も限りがあるぞ、聞け鬨の雄叫びを。

宣戦詔勅一度下り、電撃凄じ海陸軍、猛烈無比の爆雷撃は、敵艦敵機を粉微塵。

無敵皇軍正義の前進、必勝阻む間のありや、遮ぎる敵は断乎と撃破、太平洋を制圧だ。

八紘一宇の稜威の下に、燦然輝く日章旗、我ら一億総力あげて、築くぞ東亜共栄圏。

勝つぞ勝つのだ断じて勝つぞ、米英屠った此意義で、世界の歴史を書き改める、世紀の夜明だ万歳だ.

이겼다 일본, 확실히 이겼다. 미·영은 이제 격멸이다. 태평양의 적 진영은 뿌리째 무너져 소리도 없다.

동아를 침략한 오만무도를 응징한 이 승리,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들어라, 이 외침을.

선전(宣戰)의 조칙이 떨어지자 번개같이 몰아치는 무서운 육해군, 용맹무쌍한 폭탄 어뢰 공격은 적함과 적기를 가루로 만들었다

무적의 황군, 정의의 전진, 우리를 가로막는 적들을 단호히 격파하고 태평양을 제압하리라.

팔굉일우(八紘一宇) 천황의 위광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일장기. 우리들 1억 총력으로 건설하자 동아공영권.

이기자, 이겨야 한다, 반드시 이긴다. 미·영을 도륙낸 이 기세로,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쓴다, 새로운 시대를 연다. 만세.

[해설: 일본군은 1941년 12월 8일 말라야 침공을 시작해서 1942년 2월 8-15일 싱가포르 공격으로 8만 명 연합군의 항복을 받았다. 처칠 수상은 이 일을 영국 역사상 최악의 군사적 치욕으로 규정했다. 일본의 남양 점령 지역 중 최악의 학살(Sook Ching, 肅淸)이 일어난 것은 중국계 인구 비율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두 군가 가사의 번역은 편집실에서.]

10월 2일 비오다.

종일 몸이 불편해서 누워 있으면서 여러 가지 약을 먹었다. 조하원(趙河元)씨가 보내주는 송이를 맛나게 먹었다.

8월 말일 부 임시 승급의 중지에 대해서 일부 직원의 불평이 있다기에 아침에 나가서 연합회 본부의 의향도 전하고 여러 가지 주위의 정세를 들어서 차제 당국의 지시 이외의 급여를 조합 단독으로 실시함의 불가를 말하고 내가 책임을 진다든가 안 진다든가의 문제보다도 온 세상 조합이 다 부정 사실이 있더라도 이 조합만은 흠 없이 지내고 싶다고 사리를 밝혀서 누누이 설명했더니 모두 잘 양해하는 것 같았다.

[이웃 제천조합과 황강조합서 한 사람이 만원 폭이나 먹었다는데 이 조합만이 천원도 될락말락하게 먹었으므로 직원들의 불평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어제오늘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데도 직원들이 우구(雨具)도 없이 비를 맞으면서 구휼사업에 정신(挺身)한다는 걸 병석에 누워서 듣고 그들의 순된 심정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10월 3일 비 개고 흐리다. [개천절]

비를 무릅쓰고 구휼사업에 꾸준하게 노력하는 직원들의 심사(心事)가 하도 고마워서 – 그나마 급여에 대한 미타한 생각을 가지면서도 요사이처럼 분잡한 조합 일을 잘 꾸려가는 한편 그 어려운 가욋일까지 쓰다달다 말없이 잘해 나가는 것이 그게 물론 내 개인에 대한 호의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고 앙양된 동포애의 정신에 말미암음이겠지만 이즈음 직장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여느 곳 사람들과 비기어 든든하고 믿음직한 그들의 태도가 하도 탐탁해서 그들을 위해서 내 힘자라는 데까지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밤에 무럭무럭 일어나서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매일 아침 국민상식강좌 비슷한 것을 열어서 그들의 공민으로서의 지식수준을 높이기에 힘써 보기로 마음먹고 오늘 아침서부터 시작하였다. 내 주위, 내 직장에서부터 이러한 일을 해나가는 것이 또한 오늘날 우리들의 할 일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아닐까 한다.

오늘은 기미년 3·1 운동 당시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그 대략을 설명해 주었다.

제천조합 조 이사견습이 달려와서 이제 연합회로부터 봉양조합에 전근하라는 전화가 있었으나 제천 온 이후로 여러 달 동안 하숙난으로 고생하던 차에 이즈음 겨우 마쓰나가(松永) 이사의 귀국으로 사택이 나서 제천으로 이사 오기로 한 것을 또 봉양 오기 난처하다고 걱정하므로 기회 보아서 나도 그러한 사정을 연합회 지부에 전통(電通)하겠다고 말해 보내었다.

염수해, 조필환, 김상옥 제씨가 찾아와서 구휼사업에 대한 사의(謝意)를 말하고 군(郡)에서 천 원 내기로 했다 하고 또 면(面)에서 천 원을 내어서 협력할 터이니 금융조합과 봉양면 노무원호회와 공동사업으로 해나가자 하므로 좋다고 찬성하였다. 내가 우연히 뿌린 씨가 이처럼 잘 자라날 줄은 예기치 못했던 바이다. 앞으로 좋은 열매가 맺어지기 기원(企願)이다. 하여튼 구휼사업에 대한 한시름 놓게 된 것이 다행이다.

각 곳에 편지 쓰다.

강경석군이 지어 보낸 〈청년의 노래〉를 다음과 같이 우리의 노래로 고쳐 보았다.

一. 삼천리 강산의 정기를 타고

씩씩히 자라난 우리 삼천만

(세상에 못할 일 그 무엇인가)

불타는 정열을 모두 합쳐서

장하게 세우세 우리 조선을

二. 반만년 역사의 빛을 받아서

힘차게 나라난 우리 삼천만

(세상에 못할 일 그 무엇인가)

꿋꿋한 의지를 한데 동여서

굳세게 기르세 우리 조선을

三. 이십억 인류와 어깨를 겨뤄

늠름히 자라난 우리들이니

(세상에 못할 일 그 무엇인가)

눈부신 이상을 높이 세워서

영원히 빛내세 우리 조선을

역에 다음과 같이 써붙였다.

”삼천리 강산에 여명의 종이 울고

삼천만 동포에게 자유의 날은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이 있을 뿐

빛나는 건설은 앞날에 놓여있다.

문제의 해결은 민족의 자질 여하에 있다. 그리고 민족의 자질이란 그 민족을 구성하는 개인의 자질의 총화이다. 형제여! 자매여!

자아의 연마와 향상에 힘쓰자.

그것이 곧 민족 국가를 위하는 최선의 길이다.“

이 중대한 건국지추에 요행과 폭리를 추구하는 동포가 한 사람도 없기를 기원한다.

10월 4일 개다.

오늘 아침은 시조(時調) 이야기.

서악영군이 강아지를 갖고 왔다. 낮에는 잘 놀더니 밤에는 어미를 찾아서 어떻게 보채는지 괴롭고 걱정되었다. 한 마리 개를 기르려도 첫 고생이 이러하다. 세상일이 모두 이렇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구휼사업에 차 기관수들이 술에 취해서 장난을 걸더라고 못내 분개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세상에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늘 좋은 분위기 속에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때로 억울한 비웃음과 예기치 않은 곤란에 봉착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법이니 그러한 때에 풀 죽지 않고 또 무리한 상대방일지라도 잘 구슬러서 원만하게 해가는 것이 좋은 수련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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