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호황을 등에 업은 정기선 HD현대그룹 수석부회장이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글로벌 토탈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미래 먹거리인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한 투자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HD현대는 빌 게이츠가 창업한 미국 SMR 기업인 '테라파워'에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테라파워는 6억5000만 달러(한화 약 8946억원) 규모의 기금 모금을 완료했고, 여기에는 HD현대를 비롯해 엔비디아·엔벤처스·빌 게이츠 등이 참여했다.
앞서 HD현대는 2022년 11월에도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을 통해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약 440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 이 인연으로 지난해 12월 테라파워와 첫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되는 원통형 원자로 용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테라파워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은 미국에 세워지는 첫 번째 나트륨 원자로 공장을 비롯해 해외 설비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는 올해 3월에 HD현대중공업과 테라파워가 체결한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번 투자와 관련해 HD현대 관계자는 "테라파워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위해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두 손 맞잡은 정기선·빌 게이츠···2022년부터 시작된 인연
최근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테라파워와 손을 잡는 상황에서 HD현대는 빠르게 투자 속도를 끌어올리며 공고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현지에서 열린 체결식에는 정기선 수석부회장과 빌 게이츠 창업자가 참석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양사 오너가 직접 참석할 정도로 서로 간 협력에 얼마나 큰 기대감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만큼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차세대 먹거리인 SMR 사업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 그의 에너지 비전은 선박에 SMR을 장착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상 발전과 원자로 제조업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마켓앤마켓의 SMR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SMR 시장은 2022년 57억 달러(8조3000억원)에서 연평균 2.3% 성장해 2030년에는 68억 달러(9조8940억원)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에선 SMR이 차세대 선박 동력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SMR 추진선은 기존 선박과 달리 엔진의 배기기관이나 연료탱크와 같은 기자재가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탄소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강화한 HD현대는 2030년까지 SMR 추진선 개발을 완료한다는 것이 목표다. 정 수석부회장이 사업을 직접 챙기며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둑한 투자 실탄으로 SMR 드라이브
드라이브를 건 SMR 사업은 HD현대를 관통하는 미국 트럼프발(發) 호황 속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슈퍼사이클을 맞은 조선업 수익성을 바탕으로 미국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HD현대는 향후 수년간 투자 실탄에 대해 걱정을 덜은 상태다. 특히 캐시카우로 부상한 HD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올해 1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이 8조230억원에 달한다. 보유 순현금만 6조2690억원 수준이다.
HD현대가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속도를 끌어올려 투자 효과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미국 기업 테라파워와의 파트너십 강화가 미국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는 2030년까지 최소 10기 SMR 발전소를 신규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HD현대가 SMR 주기기 제조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D현대가 트럼프 호황 속에서 조선은 물론 SMR 분야에서까지 공고한 한미 간 '산업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며 "탄탄한 조선 수익성을 바탕으로 투자 효과가 가시화되면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