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재무·통상 장관이 참여하는 고위급 협의에서 한국 정부가 그동안 불허해 온 고정밀 지리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논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일 정부와 IT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 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2+2’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우리 정부는 최근 구글이 요청한 고정밀 지리 데이터 반출 허용 여부를 자동차·철강 등 한국 주요 수출품에 부과된 25% 관세 완화를 위한 협상 카드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지리 데이터 해외 반출 이슈는 국내 안보 관련 사안이라 이번 협의에서 바로 확답을 줄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 정부 내부에서 긍정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끔 노력해 보겠다는 방향성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글이 요청하고 있는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는 50m 거리를 지도상 1㎝로 표현해 골목길까지 세세하게 식별이 가능한 지도다. 구글이 과거 두 차례(2007년, 2016년) 지리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을 때, 한국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거절하거나 ‘국내 데이터 센터 설립 및 군사 시설 가림(blur) 처리’를 반출 조건으로 내건 이유다. 산업적으로도 구글이 고정밀 지리 데이터를 확보해 지도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리면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맵테크(map+tech) 기업엔 위협이 될 수 있다. 지도 데이터를 발판 삼아 구글이 자율주행과 도심항공교통(UAM) 산업 등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내 IT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안보 및 산업계 영향을 감안하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구글 측은 한국 이용자들이 그간 이용하지 못했던 다양한 지도 관련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는 입장이다. 외국인들이 구글 지도를 통해 손쉽게 한국 여행을 계획할 수 있게 되면 관광객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김득갑·박장호 객원교수는 지난해 12월 낸 논문을 통해 “지리적 데이터 수출이 허용되고 구글 지도의 다국어 지원, 오프라인 지도 서비스 등이 제공되면 2027년까지 약 68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226억 달러(약 32조원)의 관광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고정밀 지리 데이터를 해외로 보내려면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공간정보관리법)에 따라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를 통해 반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협의체는 8개 부처와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구글의 데이터 반출 신청 날짜(2월 18일)를 기준으로 결정 기한은 다음 달 15일이다. 한 차례 연장이 가능해 최종 기한은 8월 8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