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정치과잉의 시대 소설의 역할

2025-01-07

오늘같이 바쁘고 변화무쌍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대에는 앉아서 200쪽 넘는 소설을 읽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일주일간 전년 동기 대비 문학작품의 소비량이 49% 늘어났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으로 촉발된 이러한 문학작품 소비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과 사회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중에도 오늘은 특히 소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본다. 소설은 그 특질상 어떤 현상에 대한 다각적이고도 다원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장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분류할 때 우리는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평면적 인물’이란 폭군이라든가, 구두쇠라든가, 악한이라든가 하는 한 가지 특성으로 설명되는 인물을, 또 ‘입체적 인물’은 폭군이었지만 외교술에 있어서는 뛰어난 통치자였다는 식으로 한 사람에게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인물을 각각 뜻한다. 두 가지 인물 묘사 중 입체적 인물을 더 우월한 방법으로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20세기 소설론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이론을 제공한 바흐친도 소설적 상상력을 대화적 상상력이라고 규정하며 소설의 다원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는 단일한 목소리로 자신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톨스토이보다 다양한 목소리와 세계관이 각축을 벌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

예를 들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선과 악이 무엇인지, 도덕은 무엇이고 구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버지 표도르, 그의 두 명의 불행한 아내들이 낳은 세 아들, 표도르의 사생아, 그들의 여인들, 하인 그리고리, 조시마 장로 등등이 끝도 없는 논쟁을 이어가며 그들의 차이 나는 세계관들을 설파한다. 심지어는 누가 아버지 표도르를 죽였는가에 대해서도 장남 드미트리와 차남 이반은 자신들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이와 같이 다원성의 세계이자 간접 경험의 세계이기도 한데 자신의 성별이나 나이, 인종, 시대, 사회적·지리적 환경을 초월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나’라는 세계에 갇히지 않고 시야를 끝없이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벗어나기를 종종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나은 시민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눈앞의 사태에 대해 단선적이고도 평면적인 한 가지 측면만을 보도록 유도하는 정치적 양극화와 프레임 씌우기로 일관되는 정쟁에 맥없이 말려들기를 거부하는 의식 있는 개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깨어 있는 의식으로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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