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길 위의 탄생

2024-12-16

말은 달려보아야 그 힘을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고전의 교훈이요. 우리들 체험적 삶의 진실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뎌내는 일이다. 한 문장으로 쉽게 표현한다면 ‘삶 = 인내’라는 등식이다. 지금껏 내 삶은 작은 물웅덩이 하나쯤 될 만한 눈물을 흘리는 길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며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했다. 또한 모든 것을 단념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살이를 할 결단도 버팀의 의지와 능력도 부족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제 각각의 인생을 살게 되어 있다. 성공과 실패는 세상의 가치로 판단하는 것. 내가 살아오면서 공부한 인문학과 철학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진정한 철학은 인문학과 공존하게 된다. 인문학은 자유와 평등한 인간애를 생각하는 휴머니즘적 삶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학문이요 공부이다. 그런 가운데 인간으로서 도리를 생각하며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내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그 윗대 조상들은 어떻게 웃음과 친해질 수 있었으며 허허 허! 하는 마음가짐으로 삶의 무게를 지탱해 왔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한 헛웃음이든 가짜 미소든 지성적인 유머와 해학이든, 입 꼬리를 올리고 웃는 자작웃음이든 웃음이 생활과 순간의 비타민이요 감정의 소화제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인의 해학과 익살의 탈, 사랑방 유머와 지구촌의 위트' 욕도 시로 읊은 '김삿갓의 지혜로운 유머' 등을 관심 있게 읽고 스스로의 내적 평화를 위한 시동을 걸기도 했다.

그 중 김삿갓의 토속적인 고품격 지혜로운 웃음을 한 토막 소개 한다. 시제는 「욕도 시로 읊는 여유」이다. 날이 어두워 김삿갓이 어느 부잣집을 찾아들었다. 까다롭고 인색한 주인에게 천대를 받은 김삿갓은 하룻밤을 푸대접 속에 보내고 떠나면서 주인에게 ‘제가 가진 게 없어 드릴 것은 없고 시나 한 수 지어드리고 가겠다고 했다. 주인 영감은 시큰둥한 얼굴로 맘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붓을 들고 써나갔다.

天脫冠而得一点 (천탈관이득일점)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어 달았고, 乃失杖而橫一帶 (내실장이횡일대) 내(乃)는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구나.

주인 영감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낑낑대다 나중에 시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 그 뜻을 알고는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뜻은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었으니 개 견(犬)자이고/ 내(乃)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으니 아들 자(子)자를 가리키는 것. 한마디로 ‘개자식’이라는 뜻이었다.

오래 된 대중가요에는 ‘나그네 설움’ 이라는 노래가 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로 시작 된다. 삶은 걷는 것인가 싶다. 나그네는 시름겨워 걷고, 인생은 풀길 없는 그 무엇을 생각하며 걷는다. ‘직립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에렉투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 두 번째 인류로서 원인(原人)은 150만 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호모에렉투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걷기 덕분’이었으며 직립보행이 생존에 필요한 지혜로 이어졌다고 한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몸짓인 것 같다. 걷는 순간은 인간으로서 겸허한 기도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슬프고 우울할 때는 하늘을 보면서 걷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울 때는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눈이 내렸을 때는 길가 언덕에 ‘어머니!’라고 써놓고 크게 한번 불러본 뒤 걷기도 한다. 내 다리로 우주의 중심에 서서 자연을 즐기면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마냥 감사하기만 하다. ‘말은 달려보아야 그 힘을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봐야 진면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침 일찍 숲속을 걸으면서 참된 나를 만나 대화하며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순간의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 이 글의 제호와 첫 문장도 길 위에서 탄생되었다. 나는 이렇듯 길 위에서의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기대하며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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