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지노의 천국, 라스베이거스의 한낮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지.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욕망의 네온사인 불빛을 걷어낸 요즘 이 도시의 풍경은 생경하다 못해 화려하기까지 하다. 입소문을 타고 라스베이거스의 남다른 콘텐트를 ‘디깅(digging)’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럭셔리의 정점을 찍을 호캉스, 숨은 보석 같은 놀거리, 밤을 더 찬란하게 빛낼 경이로운 쇼와 로컬 미식까지. 카지노 그 이상의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다.
초럭셔리 호캉스로 즐기는 지상낙원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중심가 스트립(the Strip)에는 세계 최대 규모 카지노 호텔 체인인 엠지엠(MGM) 그룹과 시저스 엔터테인먼트(CZR)가 양대산맥을 이룬다. 그런데 지난 2021년 리조트 월드 개장 이후 2년 만에 신흥강자가 등장하며 ‘3대장 자리’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초럭셔리 호캉스’ 수요를 노린 대규모 5성급 리조트가 들어서면서다. 지난해 12월 스트립에 처음 개장한 ‘퐁텐블로(Fontainbleau)’는 타임지가 선정한 ‘2024년 세계 최고의 명소’ 100선에 이름을 올렸는데, “얼마나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지”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67층 높이에 3600여개 객실을 구비해 스트립에서 제일 고층 빌딩이자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는 새로운 럭셔리 중심지가 됐다.


기존 호텔들이 대규모 카지노 완비를 강조했다면, 퐁텐블로의 접근법은 달랐다. 20세기 중반 마이애미비치를 콘셉트로 한 수영장 ‘오아시스 풀’, 40여개의 트리트먼트룸을 갖춘 최고급 스파 등 부대시설과 쇼핑센터를 ‘초프리미엄’으로 내세웠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등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컨벤션센터(LVCC)와 인접한 점도 단체 비즈니스 방문객을 끌어당기기에 적합했다. 특히 통창으로 된 객실에선 화려한 스트립 뷰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만큼, 미쉐린(미슐랭) 제조기로 잘 알려진 앨런 야우의 ‘차이나 클럽(Chyna Club)’ 등 36개에 달하는 레스토랑과 바에선 미식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이런 퐁텐블로의 등장은 라스베이거스를 ‘메가 리조트 도시’로 명성을 얻게 한 터줏대감들까지 움직이게 했다. ‘플라밍고 호텔’은 세계적인 미쉐린 셰프 고든 램지의 ‘고든램지 버거(Gordon Ramsay Burger)’를 대대적으로 들여오고 스페셜 메뉴를 도입하는가 하면, 배우 출신 사업가 리사 밴더펌프를 내세운 럭셔리풍 칵테일바 ‘핑키스 바이 밴더펌프(Pinky’s by Vanderpump)’를 선보이며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미식 경험에 초점을 맞춘 차별화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이색 콘텐트 쏟아진다, 매력적인 낮의 모습

라스베이거스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낮과 밤의 공간이다. 잭폿의 욕망만 펼치기엔 아깝다는 뜻이다. 올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주목할 여행 트렌드는 낮에 즐길 수 있는 이색 콘텐트다. 지난 2021년 마트 콘셉트 체험형 전시회로 문을 연 ‘오메가 마트(Omega Mart)’가 대표적. 300여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투입돼 ‘틀에서 벗어난’ 예술적 시도를 해냈다는 평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현실을 벗어나는 듯한 느낌과 함께 향기도, 감각도 다르게 다가온다.


미국 특유의 기이하고(weird) 괴짜다운 감성을 느끼기에도 적합한 공간이다. 주변을 계속 둘러보게 만드는 조명과 소리, ‘마트를 탈출한 식료품’이라는 시각적 요소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곳의 켄트 칼드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오메가 마트에는 ‘머스트 두 잇(Must do it)’이 없다”며 “방문객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공간 자체를 느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이색 액티비티는 흘러넘친다. 베네시안 호텔에선 미국에서 가장 많은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방탈출 게임 브랜드 ‘패닉 룸(PanlQ Room)’을 만날 수 있다. 또 야외 골프장과 달리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는 골프 게임과 바(bar)를 결합한 공간 ‘스윙어스(Swingers)’도 새로움을 선사한다.

스트립의 화려함에서 잠시 멀어지면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진다. 차로 4시간가량 소요되는 그랜드 캐니언까지 가지 않고 대자연을 마주할 수도. 스트립에서 1시간 내외로 달리면 암석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댐과 폭포가 펼쳐진다. 이곳은 레드록캐니언 국립 보존 지구와 인접한 ‘후버댐’이다. 보트를 타고 거대 바위, 협곡 너머의 매혹적인 산등성이를 따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후버댐은 지금의 라스베이거스를 있게 한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지난 1931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추진 아래 공사가 시작되면서 인부들을 위한 유흥과 휴식 시 설을 갖춘 도시로 이름을 알리게 됐기 때문. 보트투어 가이드를 통해 후버댐의 역사를 듣고 있으면,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했단 이유로 인증샷만 남기기엔 아깝다. 현재는 하이킹 트렌드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3~4인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전히 밤은 아름답고, 길게 빛난다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공연 중 하나인 ‘오쇼(O show)’ 관람도 빼놓지 말자. 오쇼는 물을 활용한 독창적인 무대 연출과 고난도의 아크로바틱(곡예) 퍼포먼스가 압도적이다. 특히 570만리터(L) 규모의 물로 이루어진 수중 무대가 특징인데, 올림픽 규격 수영장 2개에 달하는 크기다. 26개의 수중 스피커로 전달되는 음악은 울림이 남다르다. 또 14명의 수중 기술자가 무대장치 운영은 물론, 순조로운 공연을 위해 무대 밖에서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벨라지오 호텔에서 초연 후 27년째 계속된 오쇼는 누적 공연 1만2000회, 누적 관객 약 2000만명을 넘어서며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7시와 9시 30분 하루 두 차례만 진행되고 있어 ‘피케팅(피가 튀기는 티케팅)’이 치열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공연 중 올림픽 선수 출신 출연진을 최다 보유한 공연으로, 지금도 8명의 전직 올림픽 선수가 참여 중이다. 지난 2023년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한국인 최초 태양의 서커스 단원이자 메인 코치인 홍연진씨가 있다는 점도 반갑다.

제아무리 알찬 오후였다 해도 야경 감상 없이 밤을 넘기기엔 아깝다. 늦은 밤에 더 빛나는 더링큐(LINQ) 호텔 인근의 상점가를 지나 ‘하이롤러(HighRoller)’에 탑승해보자. 550피트 높이로 우뚝 솟은 하이롤러는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통창 유리로 둘러싸인 케빈을 타고 꼭대기에 올라서면, 화려한 스트립 야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 돔(구형) 구조물 ‘스피어(Sphere)’의 거대 스크린이 시시각각 바뀌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관람에는 약 30여분이 소요된다.

또 벨라지오 호텔의 명물 분수쇼와 밤의 도시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럭셔리 레스토랑 ‘스파고(Spago)’에 방문하는 것도 권한다. 수천개가 넘는 물줄기가 음악과 빛에 맞춰 춤출 때, 브런치에 샴페인을 한 모금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잠들지 않는 도시, 화려함의 절정이다.
김세린([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