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재판 놀이 끝 반전 결말…연극 ‘트랩’

2025-11-09

“제가 살인을 했습니다.”

상식에 맞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섬유 회사 판매 총책 ‘트랍스’. 하지만 재판 놀이에 참가한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어느새 자신이 유죄라고 강변하는 입장이 된다. 서울시극단이 지난 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트랩’의 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은퇴한 법 전문가들이 펼치는 모의 법정 이야기다. 스위스 출신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Die Panne)’가 원작이다.

트랍스는 자신의 고급 스포츠카가 고장이 나 근처 묵을 곳을 찾다가 퇴직한 판사 집에 하루 머물기로 한다. 돈도 받지 않겠다고 한 집주인이 방을 내주며 요구한 조건은 ‘재판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다. 집주인과 그의 친구인 퇴직 검사·변호사가 자주 하는 게임이다. 트랍스는 놀이에서 피고 역할을 맡는다.

트랍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기에 퇴직 검사의 그를 향한 심문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장난 섞인 유도 심문으로 트랍스의 기분을 조금 긁는 정도다. 그런데 트랍스는 숨겨도 되는 사실을 굳이 꺼내 놓는다. 전 직장 상사가 뜻하지 않게 숨을 거둔 일, 고인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일 등이다. 게임이 거듭되며 트랍스는 자신을 옹호하는 퇴직 변호사의 말까지 가로막으며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유죄가 선고된다. 다만 어디까지나 ‘놀이’의 결말이다. 집주인과 친구들, 그리고 트랍스는 웃고 떠들며 유쾌하게 놀이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극은 뜻밖의 결말을 보여준다.

무대는 1, 2층 객석 포함 300석 정도의 크지 않은 규모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은 연극을 보면서 동시에 배심원이 된다. 놀이가 이어지며 자신만만하던 ‘트랩스’의 눈동자에 불안이 스며드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다이닝룸처럼 꾸민 무대에선 모의재판과 함께 만찬이 이어진다. 극 중 언급되는 독일어 ‘게리히트(gericht)’는 법정이란 뜻과 함께 ‘향연(饗宴)’을 의미하기도 한다. 송아지 간 요리, 영계 로스트 치킨이 등장하는 고급 코스 요리가 와인과 함께 오른다. 배우들은 실제로 음식을 먹으며 연기한다. 무대가 무르익을수록 와인의 숙성도는 올라간다. 1893년산 샤토 마고 레드 와인은 법정 놀이가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가사도우미 ‘시모네’의 피아노 연주는 향연에 풍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지난해 초연에서 호평 받아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올해 연극 ‘랑데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하는 등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박건형(48)이 트랍스를 처음 맡았다. 판사 등 전직 법조인 역할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남명렬(66) 등이 연기한다. 이들은 탄탄한 연기로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객석에선 여러 차례 폭소가 터졌다.

‘트랩’을 연출한 하수민은 “이 작품은 오로지 개인의 행복과 성공만을 달려가는 삶은 부도덕이라는 ‘트랩(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공연은 이달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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