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기에 앞서, 혹시 ‘웜뱃’이라는 동물을 아는가? 호주에만 서식하는 이 동물은 2020년 호주 대형 산불 당시 ‘슈퍼히어로’로 떠오르며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웜뱃은 평소 땅굴을 파며 생활하는 습성이 있는데, 재난이 닥치면 자신의 땅굴을 다른 동물들과 기꺼이 공유한다고 한다. 실제로 화재 당시 웜뱃의 땅굴은 작은 동물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전문가들 또한 그 존재가 유의미했을 것이라 평가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신의 안식처를 내어준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이타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그 공간이 ‘익명’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때, 자료에 달린 악성댓글과 허위 사실을 구분해 가며 일해야 할 때가 있다. 일을 두 배로 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릴 때가 있는데, 그때 웜뱃의 땅굴 같은 공간을 찾아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의 수많은 음악 채널 중 상황별로 맞춤 음악을 제공하는 일명 ‘플리(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즐겨듣는다. 채널 운영자가 특정 분위기나 상황에 어울리는 곡들을 모아 영상을 만드는 음악 전문 채널이다. 그중 인상 깊었던 ‘플리’는 ‘일하기 싫을 때 듣는 음악’과 ‘대신 욕해주는 음악’이었다. 평범한 일상엔 추천하지 않지만, 그 상황일 때 들으면 안성맞춤인 음악들이다.
플리의 홍수 속,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채널이 하나 있다. 바로 ‘페페플리’라 불리는 채널이다. 채널명도, 영상 제목도, 설명도 없이 단지 개구리 캐릭터 ‘페페’가 담긴 썸네일만 존재하는, 플레이리스트 전문 채널이다.
이 채널이 특별한 이유는 검색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빈 공간, 즉 투명이기 때문에 이 순간을 지나치면 다시 찾아올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만이 볼 수 있다는 특별함에 18개의 영상만으로 현재 구독자가 57만 명에 육박한 화제의 채널이 되었다.
해당 채널 속 영상엔 친절함도 섬세함도 없다. 영상 제목은 물론, 곡명도, 콘셉트도 알 수 없기에 그저 한 시간가량 그의 선곡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가지 단서라면, 영상 속 음악과 묘하게 어울리는 개구리 페페의 사진 한 장이 전부이다.
그의 첫 게시물 댓글은 혼란만 가득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들어온 이들이 모여 이 영상에 대한 단상과 토론을 펼쳤다. 하지만 세 번째 영상쯤부터 댓글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기 시작했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익명의 힘을 빌려 자신의 실패담을 고백했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원과 격려의 댓글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이 채널에 들 올 수 있는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에 희열을 느끼다 이내 ‘행운아’라 칭했다. 곧이어 다른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로 변모해 나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로또 1등에 당첨됐다.’라는 댓글이었다. 그의 댓글에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와 함께 그동안 고생했을 당첨자에게 앞으로 꽃길만 걸으라는 응원을 남겼다. 그곳엔 ‘주작(조작)’이라 비웃는 이도, 당첨금을 운운하며 비꼬는 이도 없었다. 그간 내가 봐왔던 댓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놀랐고, 그를 의심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악성댓글이 ‘사회적 타살’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해진 지금, 온라인 댓글 문화는 시스템만으로 자정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사용자는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스스로 문제를 타개해 나갈 수밖에 없었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피난처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게 그들이 정착한 곳이 ‘페페 플리’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이곳을 ‘숲속의 작은 카페’, ‘익명임에도 가장 따뜻한 공간’이라 부르며 자신만의 안식처로 삼았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남긴 감사와 응원의 댓글을 보면, 이곳이 마치 웜뱃의 땅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페페 플리’는 유튜브가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 선물을 받은 제가 울산저널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언젠가 당신도 우연히 ‘페페플리’를 만나길, 그리고 타인을 응원할 줄 아는 따뜻한 당신이 되길.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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