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이 KF-21 보라매 사업 협력에 동력을 붙이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인도네시아 측이 자국 기술진의 자료 유출 수사에 불만을 표하며 사실상 공동개발 보이콧에 돌입하자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방사청은 24일 “석 청장이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도니 에르마완 타우판토 국방차관과 만나 방산협력 현안과 미래 방산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석 청장은 “최근 일부 분야에서 입장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상호 소통을 강화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양국 간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석 청장이 ‘현재의 어려움’을 거론한 건 KF-21 사업 협력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기술진이 지난해 2월 KF-21의 자료가 담긴 비인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외부로 빼돌리려다 적발된 후 KF-21 사업 협력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인도네시아의 이 같은 행보를 놓고 방산업계에선 “수사 장기화에 대한 불만 표시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인도네시아 기술진 5명은 출국정지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찰은 방사청·국군방첩사령부·국가정보원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조사단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지 9개월 만에 부정경쟁방지법·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지시로 여전히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5월에야 기소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그 사이 한국은 분담금까지 조정하며 인도네시아의 전향적 태도를 기다렸다. 지난해 8월 방사청은 인도네시아의 체계개발 분담금을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형 전투기 양산(IF-X) 등 양국 협력관계 및 부족재원 확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이유였다. 인도네시아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조정이었다. 방사청은 당시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분담금 조정과 기술 유출 시도는 별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1조원을 깎았음에도 인도네시아에선 별다른 호응이 없었다. 분담금 조정은 합의서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 인도네시아 측은 자국 기술진의 혐의가 해소돼야 개정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방산업계에서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인도네시아가 분담금 조정에 정식 합의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한국이 ‘을’의 입장에 처한 형국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체계개발 시기와 전력화 임박 시점에 인도네시아 측의 분담금 미납이 지속되면 KF-21 전력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KF-21은 2026년 체계 개발을 마무리 한 뒤 같은 해 말 공군 인도가 시작된다.

인도네시아로의 시제기 1대 이전 여부와 기술이전 가치 규모도 분담금 조정이 합의돼야 협상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IF-X 생산 역시 한국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파이’다. 양국은 KF-21 공동개발이 논의될 때 한국이 120대를, 인도네시아가 현지 생산분으로 48대를 도입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인도네시아 도입분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 대당 단가가 높아지는 등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방산업계에선 인도네시아가 최대한 시간을 끈 뒤 추가 기술이전 등을 놓고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상당하다.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의 맹주 국가이자 방산·경제 주요 협력국으로서 미치는 영향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실제 이번 방사청장의 인도네시아 방문에서도 KF-21 외에 KT-1 기본훈련기 수명연장사업, T-50 고등훈련기 2차 사업 등도 논의됐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석 청장이 KF-21 합의서 개정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서도 “실제 성과가 나타날지는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