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임원인사를 앞두고 롯데그룹의 긴장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그룹 주력사업인 유통과 석유화학 부문이 동시 부진을 겪으면서 현금 창출력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환경 불확실성, 내수 부진 장기화 등으로 단기간에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처럼 최근 롯데그룹을 둘러싼 위기론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上) "석유화학 불황에 유동성 위기설까지"…재계 '거인' 롯데그룹 사면초가
(中) "투자 전략 실종·사업 부진"…롯데쇼핑은 여전히 '공룡'인가
(下) "주가 하락세 속 '루머'에 '휘청'"...'비상경영' 롯데 임원인사 향방 '주목'
【 청년일보 】 롯데그룹(이하 롯데)의 핵심사업인 롯데쇼핑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고물가·내수 침체 등 대내외적 악재가 상존해 있는 상황을 감안해도, 그간 단행해온 투자 전략의 미숙함과 더딘 사업구조 개편이 롯데쇼핑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 8월 그룹 차원에서 비상경영을 선언했지만, 이러한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사업 방향성에 대한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한샘 인수부터 오카도 협업까지"…전문가 "최우선 목표에 대한 고민 필요"
먼저 롯데가 단행한 대규모 투자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신동빈 회장의 결단으로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지난 2021년 공동으로 인수한 한샘이 꼽힌다.
당시 업계에서는 유통업계의 큰손인 롯데의 참전으로 가구업계 내 신풍(新風)이 불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롯데 내부에서도 한샘 인수를 통한 대대적 시너지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와 같은 롯데와 업계의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한샘에 대한 투자는 현재까지 실패로 귀결된 모양새다.
실제 롯데쇼핑은 작년 한샘 인수를 위해 2천595억원을 투입해 확보한 IMM하임코인베스트먼트원 지분 가치 1천410억원가량을 손실 처리했다.
한샘의 3분기 실적도 그리 밝지 않다. 한샘은 올해 3분기 4천540억원의 매출과 7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8.2% 증가했다.
비록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이는 올해 초 진행된 구조조정과 사옥 매각 등 고정비 감축의 영향이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가운데 2021년 한샘을 인수한 롯데의 전략적 판단에 결점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2021년 당시만 해도 한샘 등 가구업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동산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침체기였다"면서 "시장을 보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분석했다면, 한샘 인수라는 카드는 내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롯데가 구체적으로 어떤 시너지를 목표로 한샘을 인수했는지도 불명확하다"며 "롯데가 보유한 판매 채널 등을 고려했을 때 한샘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롯데마트·슈퍼가 1조원 가량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영국 리테일기업 오카도와의 협업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롯데는 온오프라인 그로서리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목표로 오카도와의 협업을 전폭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롯데는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 내 'e그로서리 사업단' 조직을 롯데마트·슈퍼에 넘겨 통합하기도 했다.
롯데마트·슈퍼는 오카도와 오는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전국 6곳에 고객풀필먼트센터(CFC)를 건립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착공을 시작했다.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이사는 당시 오카도와의 협업 배경으로 "통합 시너지를 발판으로 수익성과 효율성 개선은 물론 고객에게 혁신적인 온오프라인 쇼핑 경험을 제공해 국내 넘버원 그로서리 마켓으로 도약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롯데마트·슈퍼가 CFC 건립을 통한 배송 효율성 증대가 아닌 제품 품질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게 우선시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통업계에 정통한 한 학계 인사는 "오카도와의 협업을 통한 CFC 건립으로 인한 배송 효율성 증대가 소비자 수요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배송 효율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은 롯데마트·슈퍼를 이용할 때 경쟁사 대비 상품의 품질 자체에 아쉬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또한, 배송·물류의 측면에서도 오히려 CFC를 통한 배송보다는 오프라인 매장 기반의 배송을 확대하는 게 현재 업계의 추세"라며 "롯데마트·슈퍼는 배송과 물류적 측면을 강화하는 데 큰 비용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제품 경쟁력 그 자체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오카도와의 협업이 당초 롯데의 예상보다 큰 비용이 투입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배송·물류 시스템의 효율화보다는 점포 수 자체를 늘리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카도 시스템을 빌려 배송을 담당하는 구조인데, 이 과정에서 물류센터 건립 비용보다 더 큰 비용이 지출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이에 롯데가 오카도와의 협업을 선언했지만, 현재 진퇴양난의 형국이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히 CFC 건립을 위한 비용 투자뿐만 아니라, 이후 오카도 시스템을 통해 배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수료 등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고려할 경우 적절한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슈퍼가 '규모의 경제' 구현을 위해 점포 수 확충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대형 마트사업의 핵심은 좋은 제품을 다량으로 들여와 최대한 낮은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라면서 "특히, 롯데마트의 경우 경쟁사 대비 점포 수 자체가 크게 밀리는 상황이며, 이는 가격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만약, 제가 최고 의사 결정권자였다면, 다른 과제보다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백화점·편의점·이커머스 '흔들'…롯데쇼핑, 감지되는 '균열'
롯데쇼핑의 주요 사업군 역시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다.
주력사업 중 하나인 롯데백화점의 경우 업계에서 가장 많은 점포(32개)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각각 13개, 16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쇼핑의 첫 외부 인사인 정준호 사장의 '고급화 전략'이 브랜드 이미지 쇄신을 일구며 소기의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2017년 신세계백화점에 국내 백화점 1위 자리를 내준 뒤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롯데백화점이 최근 백화점업계에서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2030 소비자들을 붙잡는 데에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백화점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을 필두로 '고급 백화점' 이미지를 굳히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을 앞세워 2030 소비자들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면서 "반면 롯데백화점은 경쟁사에 비해 트렌드 주도에 '한발 늦은'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지점에서 젊은 소비층이 모두 이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편의점 사업도 녹록치 않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은 미니스톱 인수를 통해 점포 수를 크게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쟁사와 대등한 시장구도를 형성하고자 했지만, 되레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미니스톱 인수로 코리아세븐은 수년간 누적된 재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당초 미니스톱 인수를 통해 기대했던 '시너지' 역시 현재까지는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다. 결국 코리아세븐은 올해 10월 '체질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초부터 미니스톱 인수는 코리아세븐의 상황에서 다소 무리한 선택이었다"면서 "미니스톱의 브랜드 이미지 흡수로 크게 득을 볼 게 없을뿐더러, 세븐일레븐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 궁극적으로 확보할 이익보다 훨씬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의 7개 쇼핑몰을 통합해 출범한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서비스 롯데온은 2020년 출범 이후 매년 1천억원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다. 경쟁사인 신세계그룹의 SSG닷컴, G마켓 및 11번가와 달리 이커머스업계 내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국내 1세대 이커머스인 G마켓, 11번가의 경우 과거부터 이들 서비스를 이용해온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심이 강하다. SSG닷컴도 신세계백화점의 프리미엄 이미지와 이마트의 브랜드 파워에 힘입어 업계 내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 롯데온은 서비스 방향성과 전략 부재로 업계 내에서 '플레이어'로 고려되지도 않을 만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롯데쇼핑이 2015년 '옴니채널'을 최초로 시도했지만, 전략 부재로 결국 실패했던 전례를 반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이커머스 업계 전문가는 "국내 주요 이커머스업체를 언급할 때 롯데온의 점유율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롯데온은 '롯데쇼핑'이라는 강력한 뒷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롯데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롯데온은 결국 6월 출범 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며 고정비 절감에 나섰다.
유통업계에 밝은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롯데는 국내 최대 유통사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신세계 등 경쟁사 대비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 미숙한 모습을 보여왔고, 최근까지도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전혀 개선되지 못한고 이어지고 있다"면서 "결국 이 문제는 롯데의 의사결정 체계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재 진행 중인 승계작업 이전에 더욱 집중해야 할 부분은 롯데 자체의 투자전략 개선과 본업 경쟁력 강화"라며 "롯데의 경영 시스템과 사업전략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