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서 ‘홈런왕’이 되겠다며 뒷마당에서 노래 부르던 8살 꼬마의 이야기가 20년이 지나 현실이 됐다.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인 칼 롤리(29·시애틀)의 이야기다.
20년 전, 8살 롤리는 집 뒷마당에서 야구 방망이를 든 채로 춤추며 “내가 홈런 더비 챔피언이야”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캠코더로 촬영한 20초 분량 짧은 영상은 홈런 더비 전부터 이미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영상의 주인공인 롤리가 홈런 더비에서 정말로 우승까지 차지하며 더 큰 화제가 됐다. 영상을 촬영한 롤리의 아버지가 15일 홈런 더비에서 배팅볼을 던졌다. 동생 토드 롤리 주니어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공을 받았다.
롤리는 홈런 더비 우승 후 20년 전 영상에 대해 “어디서 그 영상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믿기지 않는다”고 웃었다.
롤리는 홈런 더비 1라운드 좌우 타석에 모두 나가 홈런을 때렸다. 2라운드와 결승 라운드는 좌타석에 집중했다. 롤리는 홈런 더비 역사상 첫 스위치 히터 우승자다. 동시에 첫 포수 우승자이기도 하다.
롤리는 1라운드를 아주 간발의 차로 통과했따. 홈런 개수가 같으면 최장 타구 비거리로 승패를 따졌는데, 롤리가 143.38m 홈런을 때리면서 143.36m를 때린 브렌트 루커(애슬래틱스)를 제쳤다. 2라운드부터 왼쪽 타석에만 나간 것도 1라운드가 워낙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롤리는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았다. 밥 한 끼 더 먹은 덕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롤리는 시즌 초 리그를 강타했던 ‘토피토’ 배트를 들고나왔다. 왼쪽 타석 방망이가 오른 타석 방망이보다 가벼웠다. 제한된 시간 계속해서 방망이를 돌려야 하는 홈런 더비 특성상, 왼쪽 타석에서 가벼운 방망이를 돌리면서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롤리는 “아버지, 동생하고 1라운드는 ‘스위치로 가자’고 했다. 승패와 관계없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1라운드 3분이 정말 길게 느껴지더라.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롤리는 올 시즌 전반기에만 38홈런을 때리며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를 제치고 리그 전체에서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다. 전반기 38홈런은 2001년 배리 본즈의 39홈런에 이은 역대 2번째 기록이기도 하다.
스위치 히터에 포수 슬러거라는 조합 자체가 워낙에 흔치 않다 보니 시애틀뿐 아니라 미국 전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롤리가 우승을 차지한 이번 홈런 더비 결승전 평균 시청자는 572만9000명으로 지난해 545만1000명보다 30만 명 가까이 늘었다. 순간 최고 시청자는 630만7000명에 달했다. 홈런 더비 중계사 ESPN은 “지난해 홈런 더비보다 시청률이 5% 더 올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