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그 진가를 모른다…시골집서 깎은 ‘박경호 현악기’

2025-12-09

권혁재의 더 사람+

박경호는 부안 시골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태권도 선수로 자랐다. 동대문 보세옷 디자이너가 되어 밥을 팔다가 아내를 두고, 평생 밥벌이가 되리라 믿고 이탈리아 악기 학교에 다녔다. 이때 비슷한 이유로 이탈리아 요리를 하던 박찬일을 만났다.

수석 졸업, 귀국. 어머니를 위해 집을 손수 짓다. 일찍 돌아가시고, 그 집에서 악기를 깎는다. 세계 최고급 완전 수제,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무와 활과 도료를 사서 만든다. 악기 사대주의, 가짜 서양 악기에 속는 한국인은 그의 악기를 잘 사지 않는다. 1년에 고작 2대. 악기가 쌓여, 부안 시골 바람 잘 통하는 작업실에서 숙성된다.

그래도 그는 오늘도 악기를 깎는다. 유품으로 남을 악기를.

박찬일 씀

글쓰며 요리하는 박찬일 셰프와 박경호 현악기장의 인연은 1999년부터다.

남의 땅에서

오지게 고생하며 이어온 인연이니

박 셰프는

박 현악기장 삶의 진력을 추천서를 빌려 알맹이만 쓴 게다.

박 셰프는

이탈리아어 한마디도 못 하면서

굽비오 현악기 제작 학교(Scuola di Liuteria di Gubbio)에 입학한 당시의 그를 두고

‘막고 품는 삶’이라고 한다.

도랑 양쪽을 흙으로 막고 물을 뺀 후 고기를 잡는 최후의 어로 법인 ‘막고 품다’.

어떻게든 하고 보자, 어떻게든 해내자는 절박감의 날들이었다는 의미다.

전북 부안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말 한마디 못 하면서 스스로 절박한 상황에 뛰어든 이유부터 물었다.

당시 그의 나이 29살이었다.

서울에는 아내가 있었지만,

꽂힌 터라 무턱대고 바로 그날 입학 면접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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