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눈신토끼들의 밤

2024-10-07

눈이 계속 내리던 밤, 알래스카에 가자고 했다 늙은 밤이었고 눈신토끼가 있다고 했다 알레스카에는

온통 눈신토끼

우리는 배가 고파서 겨울밤, 굴을 파고 들어갔다 늙은 밤은 호기심이 많고 움직이는 걸 좋아해 눈더미가 움직이더라도 소리를 지르면 안 돼 허기가 추위 속에서 다시 추워도 목 없는 귀신이 돌아다녀도

불빛 하나 없는 흰 무덤, 당신의 등,

돌아보면 하얀 눈이었다

케이크를 주세요 딸기가 박힌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녹지 않을 아이스크림은 더 좋아요 배고프면 당신을 먹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굴을 파고 겨울밤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덧신 같은 커다란 발을 감추며 웃는 토끼는 목 없는 귀신보다 무서워 토끼도 배가 고파서 그런가 봐, 당신은 말했다

아무도 없는 척을 해야 해 짐작할 수 없어 짐작을 감추면서

흰 무덤 위로 눈이 자꾸만 쌓여가고

이제는 스탠드를 켜야 할 시간

눈이 계속 내렸다

눈이 계속 내렸다

허기처럼 그 겨울 내내 눈이 계속 내렸다

◇약력: 2022년 시와시학 신인상 등단

■해설: 눈신토끼는 토낏과의 포유류로 몸의 길이는 36∼53cm이며 뒷다리가 앞다리에 비하여 크고 눈 위를 걸어 다니는 데 알맞게 발달 되어 있다고 한다. 몸의 빛깔은 겨울에는 순백색, 여름에는 노란색이지만 회색 또는 갈색을 띠는 등 변이가 다양하다. 캐나다, 알래스카 등지에 분포한다는 이 토끼를 시 속에 데려다 놓은 시인은 드디어 거침없는 상상의 도발을 보여주고 있다. "늙은 밤이었고"," 불빛 하나 없는 흰 무덤, 당신의 등,","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굴을 파고","짐작할 수 없어 짐작을 감추면서","웃는 토끼는 목 없는 귀신보다 무서워"라는 은유는 시인 나름에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으면서 개성이 강한 메시지의 전달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이제는 스텐드를 켜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 눈이 계속 내렸다"의 반복은 가진 것 없어 여행을 그저 상상으로 떠나야 하고, 사랑 행위 또한 현실로부터의 도피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이 시는 묘한 상상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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