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가 ‘교육 개혁’의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했던 ‘AI디지털교과서(AIDT)’ 사업이 도입부터 검정까지 총체적 부실을 겪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무리한 도입 시한을 맞추려 필수 검증 절차를 생략했고, 공정성이 관건인 검정 과정에서도 심각한 하자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AI디지털교과서 도입 관련 감사보고서’를 공개하고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에 주의 조치를 통보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감사요구안이 통과하면서 착수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부는 AIDT 도입 과정에서 물리적 시간을 이유로 기본적인 검증 절차를 소홀히 했다. 감사원은 “2022년 11월 취임한 당시 A장관(이주호)의 지시로 2025년 도입 목표가 설정됐다”며 “당초 2024년 시범운영을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개발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시범운영을 전면 생략했다”고 지적했다.
대체 절차인 ‘현장적합성 검토’ 역시 형식적이었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감사원은 “실제 검토가 방학 기간인 2024년 12월부터 2025년 2월 사이에 집중돼 수업 적용이 불가능했다”며 “실제로는 단순 표기 오류나 기능 접속 여부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했다. 또한 기술 규격서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정 공고를 내, 발행사들이 개발 도중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혼선을 초래했다.

교과서 검정의 핵심인 ‘공정성 관리’ 부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검정 심사본의 웹주소(URL)나 소스코드에 특정 발행사명이 노출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규정상 발행사명 노출은 부정행위로 불합격 사유지만, 감사원은 “교육부가 ‘노출이 과하거나 의도적이지 않으면 합격에 영향이 없게 하라’며 사실상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확인 결과, 당시 업체명이 노출됐던 4개 발행사가 최종 합격했다. 한 발행사가 검정 기간 중 데이터를 144차례나 무단 수정한 정황도 드러났지만 이를 걸러낼 시스템은 없었다고 한다.
재정 부담을 지방교육청에 일방적으로 전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은 AIDT 구독료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 총액 약 2조 8147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도, 교육부가 이를 시·도교육청이 전액 부담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했다. 감사원이 2025년 자율 선정 학교들의 활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고등학교 1학년 영어 과목의 경우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학생 비율이 72.8%에 달했다.

AIDT 도입 과정은 정치적 진통도 상당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AIDT 도입 유보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을 돌파하자 정부와 날 선 공방을 본격화했다. 강민정 전 의원은 같은 달 교육위 예산 심사 과정에서 “디지털 중독 부작용 대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수조 원을 쏟아붓는 건 예산 낭비”라며 관련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이후 고민정 의원도 “우리 아이들을 실험용 쥐로 만들텐가”라며 도입 반대에 앞장섰다.
반면 업계의 저항은 거셌다. 교과서 점유율 상위권인 A 업체 등 일부 대형 발행사는 대형 로펌을 선임하고 국회와 교육부를 상대로 전방위 대관(對官) 업무를 펼쳤다. 수천억 원의 개발비를 투자한 상황에서 ‘의무 도입’이 좌초될 경우 막대한 손실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일부 발행사는 지난 4월 교육부의 자율선정 방침 변경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지난 8월 국회는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서 AIDT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관계자는 “업계의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을 관철시켜, 학교 현장에 AIDT가 의무적으로 깔리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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