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가 남달랐던 정약전ㆍ정약용 형제

2025-03-10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정약전과 정약용.

경기도 마재 땅에서 다섯 형제 가운데 둘째와 넷째로 태어난 둘은 어릴 때부터 우애가 남달랐다. 형제끼리도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둘은 유난히 정이 두터웠고 공부를 좋아하는 성향도 잘 맞았다.

홍기운이 쓴 이 책, 《편지로 우애를 나눈 형제, 정약전과 정약용》은 형제이자 서로를 알아주는 벗이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겨울밤 화롯불 앞에서 듣는 것처럼 따뜻하게 풀어내는 책이다. 주막에 묵던 한 선비가 주막집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정 씨 형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화순 현감으로 있을 때 근처의 절에 머물며 함께 공부했다. 그때 정약전이 읽은 책이 《서경》, 정약용이 읽은 책이 《맹자》였다. 함께 공부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길 만큼 뜻이 잘 맞았기에, 서로 모르는 것을 묻고 답하며 즐겁게 공부했다.

둘 가운데 먼저 벼슬에 나간 이는 아우 정약용이었다. 처음에는 벼슬에 뜻이 없던 정약전도 아우가 임금을 섬기려면 벼슬길에 올라야 한다고 몇 번이나 설득해 조정에 출사했다. 함께 벼슬길을 걷던 형제는 정조가 승하하면서 나란히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 가는 길에 둘이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 곳이 주막집 ‘율정점’이었다.

(p.23)

살아 있는 동안 미워할 율정점 주막

문 앞에는 길이 두 갈래로 갈렸네.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지는 꽃잎처럼 흩날려 버렸네

. - 정약용이 훗날 둘째 형님의 편지를 받고 쓴 시

형제이자 벗으로 지내다 한순간 이별을 맞게 된 두 사람의 아픈 심정이 잘 드러난다. 유배지로 떠난 그들은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시름을 달랬다. 세상이 자신을 잊어버린 시기, 서로를 격려하는 편지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을 것이다.

둘은 다시 볼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정약용이 먼저 귀양에서 풀려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약전은 아우를 마중하러 우이도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흑산도 주민들이 쉽게 놓아주지 않아 한 해 만에야 겨우 우이도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정약용에게 유배를 끝내도 좋다는 명령서가 도착하지 않아 정약용이 출발할 수 없었다. 의금부에서 석방 명령서를 보내려 한 것을 강준흠이라는 사람이 반대하여 보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정약전은 아우를 만나지 못한 채 1816년 우이도에서 눈을 감았다. 율정점 주막에서의 밤이 형제가 함께한 마지막 순간이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서로서로 알아주는 ‘지기(知己)’였음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은 오로지 형님만이 나를 알아주었는데, 형님이 떠났으니, 앞으로 공부하여 얻는 것이 있어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슬퍼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것은 마치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구절이 마음을 울린다.

네가 고치고 또 고쳐 처음 쓴 원고를 여러 번 바꾸는 것은

훗날 이 책으로 배울 이들에게 모범이 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니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

아아, 아깝구나! 누가 있어서 이것을 알아줄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즐겁지 않다는

너의 탄식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 정약전이 아우 정약용에게 보내는 편지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오직 형님만이 나를 알아주셨는데

이제 그분마저 잃었구나.

앞으로는 공부를 하여 얻는 것이 있어도 누구에게 입을 열어 말하겠느냐.

사람에게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처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자식이 알아주지 않고,

형제나 집안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나를 알아주는 분은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까?

-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형제이자, 학문을 함께 하는 벗이자, 벼슬길을 함께 하는 동료이던 두 사람은 유배지에서 아까운 세월을 보내고 결국 만나지 못했다. 자신을 알아주고 격려해 주던 형 정약전을 잃은 정약용의 마음은 죽는 날까지 무척 허전했을 것 같다.

형제가 많아도 그 가운데 학문을 함께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인연은 흔치 않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계속 관직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 또한 나름대로 큰 업적을 남겼겠지만, 두 형제가 세상에 남긴 수많은 저작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둘의 불행은 운명이었던 걸까. 율정점에서 아쉽게 헤어진 두 사람의 마음과 우정을 느껴보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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