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3억뷰를 돌파하며 넷플릭스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OST도 빌보드 앨범·싱글 양대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다. 엄청난 인기몰이다. 비록 ‘국산’은 아니지만, 케이팝과 무속 등을 소재로 한 우리 이야기에 서구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열광하는 이채로운 풍경이다.
홀드백 붕괴, 영화계 고사 위기
유럽 적극 준수, 미국도 3개월
시청권 침해 등 이견 조율하고
공동제작 등 글로벌화 나서야

‘케데헌’이 K콘텐트의 새 역사를 쓰고 있지만, 한국 영화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침체를 거듭했고, 올해 연간 극장 관객 수 1억 명 붕괴를 목도할 위기에 처했다. ‘독점적 1차 시장’으로서 극장의 위기는 영화산업 전반의 위기를 불러왔다. 수익도, 관객 수도 쪼그라들었다. 돈줄이 마르고 제작 편수도 줄었다.
한국 영화산업 코로나 타격 가장 커
영화계의 장기 불황에는 극장 개봉 영화가 OTT에 풀리기까지 암묵적으로 6개월~1년 정도 시한을 지키던 홀드백(극장 외 플랫폼 공개 유예기간) 관행이 무너진 것도 한몫했다. 송강호 주연의 ‘1승’은 개봉 20일 만에,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은 개봉 한 달 만에 OTT와 IPTV에 풀렸다.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 공개되니 굳이 극장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하필 티켓값도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때 전 세계 극장 대다수가 관람료를 올렸지만, 우리나라의 상승률이 제일 높았다. “한국영화산업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무너졌고 회복은 가장 더디다.” 전영문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의 말이다,
침체된 영화산업 회복안의 하나로 꾸준히 지목돼온 ‘홀드백 법제화’가 드디어 첫발을 뗀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홀드백 6개월’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극장 개봉작은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이 지나야 OTT에서 방영할 수 있다.
인하대 노철환 교수의 ‘한국영화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디어 홀드백 도입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글로벌 OTT의 위협에서 자국 영화 시장을 보호하려는 홀드백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와 불가리아는 대표적인 홀드백 법제화 국가이며, 영국·벨기에·스페인·스웨덴·노르웨이 등 14개국은 ‘계약’이나 ‘협약’의 형식으로 홀드백을 준수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홀드백을 공적 지원과 연계한다. 미국에서도 평균 3개월 정도의 홀드백은 지켜지고 있다. 노철환 교수는 “적절한 홀드백 규제는 공정경쟁 환경을 마련하고 영화관 시장 재건을 통한 영화산업 재도약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시청권 침해라는 소비자의 목소리, 영화계 당사자들 간의 엇갈린 이해 등 조율해야 할 부분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3년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극장 관람 빈도가 줄어들었다는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24.8%),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24.2%)를 들었다. ‘극장 개봉 후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관람 방법으로 시청이 가능해져서’는 16.6%였다. 홀드백 기간이 만능 키가 아니라는 얘기다.
작은 영화들은 극장을 잡기 어려워 IPTV나 OTT를 택할 수밖에 없고, 큰 영화는 극장과 OTT에 동시 판매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중소 규모 영화가 극장 외 창구에서 유연하게 수입을 내기 어려워진다면 자칫 대작만 만들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예측할 수 있다.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급작스런 법제화는 오히려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로 직행하는 경우를 낳아 극장에게 손해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원칙 없이 무너진 홀드백 규제와 함께 극장매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익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작은 내수시장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 국제 공동제작 등으로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태동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뒀고, 마침내 ‘케데헌 신화’를 끌어낸 K팝이 반면교사일 것이다. 국제 공동제작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 막힌 돈줄을 뚫는 정부의 지원 등도 필요하다.
새 정부 ‘문화강국’ 정책 내놔야
최근 이창동 감독은 7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을 찍으며 넷플릭스를 택했다. 극장 개봉이 우선 선택지였으나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 이 감독은 영진위가 올해 신설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제작비 60억 이상~80억 미만)에 뽑혔지만, 신청을 자진 철회하고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다. 거장의 선택이 말해주는 충무로의 현실이다.
“향후 10~15년 정도는 넷플릭스 독주”(조영신 『애프터 넷플릭스』 저자)가 예상되고 영화뿐 아니라 영상산업 전반이 글로벌 OTT의 파고에 쓸려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시대다. ‘문화강국 실현’을 약속한 새 정부가 어떤 정책적 마중물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