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 위치한 주물 업체 한국기전금속. 공장에서는 근로자들이 용광로에서 녹인 쇳물을 형틀에 부어 원하는 모양의 쇳덩이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동현 대표는 “현재 일하고 있는 30명 가운데 한국인 근로자는 작업반장 역할을 하는 1명뿐”이라며 “본인 작업을 하는 동시에 나머지 29명을 모두 가르치기는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자와 공장 내부 주조 과정을 둘러보는 와중에도 연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큰소리로 작업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2018년 55만 5072명이던 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6대 기반 공정 산업(전통 뿌리산업) 종사자 수는 2023년 49만 843명으로 감소했다. 국내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발생했던 2020년 49만 946명으로 줄어든 후 4년째 50만 명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뿌리산업 모집단이 뿌리기술 매출 50% 이상 사업체에서 2018년 1% 이상 사업체로 변경된 후 50만 명 선이 붕괴된 것은 그해가 처음이었다. 2021년은 48만 9743명, 2022년은 48만 6214명이었다.
애초 뿌리산업은 6대 기반 공정 산업만을 일컬었다. 하지만 2021년 뿌리산업진흥법 개정으로 정밀가공 등 4대 소재 다원화 공정 산업, 로봇 등 4대 지능화 공정 산업 등 총 16대 산업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전통 뿌리산업 종사자 수가 줄고 있는 반면 부족 인원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통 뿌리산업계가 부족하다고 밝힌 인력은 △2018년 2568명 △2019년 1만 1138명 △2020년 9936명 △2021년 1만 4555명 △2022년 1만 5056명 △2023년 1만 8232명 등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근로자의 연령은 매년 높아지고 있고 외국인 근로자 비중 역시 해마다 커져가는 양상이다. 이 기간 60대 이상 근로자 비율은 4.4%에서 9.8%로 높아졌고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9.7%에서 11.5%로 커졌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중소 뿌리산업 업체의 인력 상황은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의 실태 조사 결과보다 훨씬 심각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각각 10% 수준이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비중은 90%에 달했다. 공병호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 전무는 “관리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아닌 생산직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의 경우 근로자 90% 이상이 외국인이고 내국인은 60대 이상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 관계자는 “뿌리산업진흥법 시행령이 규정한 사업체 중 매출의 1% 이상이 뿌리기술을 활용해 발생하는 산업체를 실태 조사 모집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뿌리기술 매출 비율이 큰 곳의 상황과 조사 결과값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세대 창업주가 자녀들에게 일을 물려주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지금 우리 나이대 뿌리산업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오너 중 부모 세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며 “우리가 1세대인 셈인데 뿌리산업의 대물림은 이미 10~20년 전에 끊겼다. 그러면서 “오너가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내국인 근로자도 아닌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근로자 수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스마트공장 구축 등을 통해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국인 근로자 고용 비용을 보조해주는 형태의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해 한국 근로자들에게 돈을 좀 더 주더라도 현재의 뿌리산업 작업 환경에서는 고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당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현장에 더 잘 채워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지원을 하고 중장기적으로 초기 투자비 지원 등을 통한 뿌리산업 스마트공장 구축으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유입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