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와 손정의

2025-01-12

손, 남다른 담력·도전 의식으로

트럼프와 친분 과시할 만큼 성공

결정적인 순간 기회를 얻으려면

미래 내다보고 네트워크 쌓아야

2024년 12월,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孫正義)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저택에서 당선 뒤 첫 기자회견을 함께하며 4년 동안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7조원)를 투자해 1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손 회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친근하게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한국이 트럼프 당선인 측과의 네트워킹을 하기 어렵다는 기사가 쏟아질 무렵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후 손정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자 워싱턴의 한 일본 전문가가 들려준 얘기다. 1993년 11월, 36세의 젊은 벤처기업가였던 손 회장은 매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던 컴덱스(1997∼2003년) 컴퓨터 박람회를 방문했다. 전시장을 둘러본 뒤 그는 박람회를 운영하던 유대인 억만장자 셸던 아델슨을 찾아가 컴덱스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돈은 있냐 묻는 아델슨에게 그는 “지금은 돈이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돈을 벌 것”이라며 본인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에게도 팔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1년 뒤 그는 아델슨 앞에 나타났고, 가격을 깎지 않을 테니 원하는 값을 말해보라고 했다. 아델슨은 반신반의하며 8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1조원)를 불렀다. 손 회장은 아무런 협상 없이 그 돈을 지불했다. 약 20년이 지난 2016년 겨울, 손 회장은 아델슨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전화였다.

아델슨은 1995년 컴덱스 인수 후 약 20년간 카지노 재벌로 성장했다. 아델슨이 손 회장으로부터 받은 8억달러가 밑거름이 됐다. 이를 토대로 아델슨은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트럼프 당선인에게 수억 달러의 기부를 하며 그의 친(親)이스라엘 정책과 아브라함 협정 체결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손 회장을 트럼프에게 다시 연결시켜 준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이 관계가 돈도 돈이지만 생각보다 오래된, 복합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당선인 주변에 셀 수 없는 네트워킹 노력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성공하는 네트워킹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이 전문가는 일본엔 손 회장의 존재가 행운이라고 했다. 재일교포(1990년 귀화)라고 차별 받던 어린 시절을 보낸 손 회장이 일궈낸 역전극이다. 2월로 조율 중인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손 회장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없는 일본에 이제 ‘트럼프로 통하는 길’은 명실공히 손 회장이 됐다. 미·일 관계는 시작부터 순풍을 타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일각에선 미국 행정부가 바뀌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 방침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당선인도 선거 당시엔 지지 기반인 노동자 계층을 의식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한 바 있지만, 결국 실리를 취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부, 정계, 기업계가 ‘트럼프 측’과 연결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과 트럼프 당선인의 15분 대화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보고 이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 정상회담 시점도 예측하기 어려운 마당에 누가 취임식에 가느냐, 취임식과 무도회 모두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등을 놓고 소모적인 언급을 하는 것 또한 이 시기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신의 ‘본업’에서 담력과 도전 의식으로 성과를 내면 이것이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고, 그것이 더 큰 네트워크의 씨앗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도 기회는 열려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조선업 협력도 있고, 반도체나 제조업 분야 투자 등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한국의 각 산업 분야에서 결국 도전과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와 함께 미래를 내다보고 미국 각계와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쌓는 일은 트럼프 시대를 넘어 한국에 앞으로도 꾸준히 남을 과제가 될 것이다.

홍주형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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