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일반인도 쉽게 주식투자, 첫 전국 지점 낸 ‘증권계 대부’

2025-01-12

강성진 전 한국증권업협회장이 지난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8세. 강 전 회장은 195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한국 증시의 역사를 만든 ‘증권계의 대부’이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선구자다.

1927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강 전 회장은 6·25전쟁 후 동아건설(당시 충남토건)에서 재정담당으로 일하다 증권업계에 입문했다. 강 전 회장은 최준문 동아건설 창업주에게 “큰돈을 만지려면 명동에 진출해야 하며, 이를 위해 증권회사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동아건설은 1957년 흥일증권(동명증권으로 개칭)을 인수했고, 최 창업주는 강 전 회장을 동명증권 상무로 발령했다.

강 전 회장이 증권업계의 리더로 올라선 건 1964년 직접 삼보증권을 인수하면서다. 삼보증권은 국내 1위로 성장하며 1972년 증권업계 최초로 신입사원을 공채했다. 전국에 지점을 만들어 증권을 일반인도 거래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1979년 건설주 파동으로 거액의 미수 계좌가 발생했고, 직원이 고객 돈에 손을 대는 ‘창구 사고’가 1982년 시재금(환불 요구 등에 대비해 준비하는 돈) 부족 사태로 번졌다. 결국 강 전 회장은 전 재산을 팔아 시재금을 메운 뒤 1983년 삼보증권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에 넘겼다. 강 전 회장은 2014년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앞만 보고 달리면서 내부 단속을 소홀히 했던 내 탓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청춘을 바친 회사여서 지금도 ‘삼보’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마구 뛴다”고 회고했다. 강 전 회장은 1981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시리즈에 증권업계에서 겪었던 산전 수전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해 4월 15일 게재된 시리즈 1회에선 “한국의 증권계는 숱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고 적었다.

강 전 회장은 1990년 증권업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업계의 의지로 선출한 첫 협회장이었다.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가 1년 반 만에 반토막이 나는 등 혼란기였다. 강 전 회장은 25개 증권사·은행·보험사·기업 등을 설득해 4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기금’을 설립했다. 고인은 생전 “‘증권 인생’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은 증시안정기금 설립”이라고 말했다.

강 전 회장은 옛 삼보증권 사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BNG증권의 명예회장을 끝으로 2013년 은퇴했고, 이듬해 쓴 회고록 『증권 반세기』를 펴냈다. 차남인 강흥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은 2014년 중앙SUNDAY에 “아버지가 단 하루도 주식시세표를 꼼꼼히 훑어보지 않는 날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강완구 일동월드와이드 회장, 강흥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딸 강신애 따뜻한재단 이사장, 사위 박용만 같이걷는길 이사장, 며느리 김미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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