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대한민국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갈등 인식 수준이 4점 만점에 3.04점으로 지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세대 간, 이념 간, 계층 간 갈등이 서로 얽혀있으며, 사회 내 신뢰 수준이 상당히 낮은 상태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극단적 의견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는 '통합'의 방향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하지만 사회 협력의 기본 원리인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게 하는 '소통의 힘'이다.
소통이란 단순히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조직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포용과 화합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성장과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 속에서 다양한 갈등이 축적되어 왔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커졌고, 정치적 이념의 차이는 더욱 극명해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2.3%가 한국사회의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하는 등 이런 세대 간 인식 차이는 단순한 의견 불일치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계층 간 갈등도 첨예해졌다. 부동산 문제, 일자리 부족, 복지 정책 등을 둘러싼 대립은 사회적 연대 의식을 약화시키고 있다. 정치적 이념 갈등 역시 대화보다는 정쟁과 비난의 형태로 나타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는 '소통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배워 온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협력은 이제 사라지고 각자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회로 빠르게 치닫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인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이다.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다양한 의견이 조화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갈등이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을 때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대화를 통한 협력에서 찾아졌다.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은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을 통해 사회적 대화 문화 정착으로 노동시장 안정 및 경제 성장에 기여하였고, 네덜란드 역시 1982년 바세나르 협약 이후 사회적 합의를 통한 경제 회복 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하였다. 또한 유럽연합(EU)을 이끄는 독일이나 프랑스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정치·경제 및 사회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과거 소통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을 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2·23 합의, 2009년)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9·15합의, 2015년)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2016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노사정이 소통과 협력을 통해 상생의 해법을 찾은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포용과 화합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통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 학교, 기업, 정부가 함께 소통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은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우리 교육 시스템은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지만, 앞으로는 경청, 토론,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대학과 직업교육 기관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비판적 사고와 소통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세대 간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와 청년들이 함께 소통하며 경험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기업과 조직에서도 수직적 소통 방식을 탈피하고,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대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오픈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며,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여 조직 내 소통을 강화하고,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나 앞으로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론장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최근 프랑스, 대만 등에서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시민 참여형 공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도 공론장을 통한 대화의 기회를 확대하고,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소통을 기반으로 한 포용과 화합의 문화를 정착시킨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다. 소통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 신뢰를 구축하고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이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역량이다.
소통을 통해 갈등이 해소되고 공동체 간의 굳건한 신뢰가 형성된다면, 우리 사회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풍요로운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의 바람처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이철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필자〉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법과대학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고, 서울대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처장, 평의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법학회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노동정책 입안과 사회적 대화에도 적극 활동해온 노동법·노사관계 분야 최고 권위자다. 현재는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서 노동시장 분야 활성화를 위해 전국민의 전생애에 걸친 수요자 중심 평생직업교육 모델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