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는 딸이니까 니한테만 말하지
김소영·홍아란·박하람 지음
딸세포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세 사람은 1950~60년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이자 '엄마'들이다. 지은이들은 각자의 딸로, 모두 1990년대 초반 태어났다. 30대인 지은이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여러 차례 인터뷰해 그 삶을 글로 담아내는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섰다. 책에 실린 세 편의 이야기는 이런 구술생애사 워크숍의 결과. 구어체를 살린 문장과 더불어 교과서식의 역사 서술에서 볼 수 없는 삶의 모습을 전한다.
세 주인공의 삶은 다들 저마다 집 안팎에서 숱한 일을 해온 점이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평일에 손주들을 돌보고 주말에는 다른 곳에서 일하느라 주 7일 일하는 주인공도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은 결혼 전 백화점·호텔·공장에서 일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방 한쪽에서 피부 관리 일을, 나중에는 중고차를 사서 화장품 방문 판매 일을 했다. 비슷한 또래의 다른 주인공 역시 지금처럼 밤새 도매시장을 다녀오며 옷가게를 하기 전부터 음식점을 비롯해 여러 자영업을 거듭했다.
가사와 양육과 생계 부양을 하며 쉼 없이 일하고 돈을 벌었지만, 대개는 남편을 비롯해 가족의 적극적 격려나 응원을 받는 쪽은 아니었다. 무관심과 때로는 반대도 겪었다. 양육이나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일을 포함해 이들이 해온 일에서는 한국 사회의 흐름도 읽힌다. 책은 그런 시대상을 편집자 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전하는 삶은 사회사로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개인사의 면면이 또렷하다. 지은이들 역시 전기나 평전의 저자와 달리 객관적인 관찰자나 서술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이라면 몰라도 결혼과 출산 이후 주인공들의 삶은 경제적 부침이나 가부장제, 이혼, 가정 폭력 등을 아울러 지은이들의 성장기나 이후의 삶과 당연히 맞물린다.
실은 그래서 더 궁금했을 것 같다.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엄마가 왜 그랬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슨 마음이었는지. 지은이들은 질문을 던지고 엄마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마음을 꺼내 놓고, 문답은 종종 대화로 전개된다. '세 엄마 이야기'가 아니라 '가깝고도 먼 세 모녀 이야기'인 책의 부제가 정직하다.
가족도 그렇지만, 모녀 관계는 묘하다. 책 소개 글의 표현처럼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한다. 이혼하고 집을 떠나던 날 말없이 솥에 가득 전복죽을 끓여 놓은 엄마, 자신감을 북돋워 주기보다 엄했던 엄마,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던 엄마, 뒤늦게 학원을 처음 다녀온 날 울면서 '가나다라'를 쓴 엄마...지은이들의 쉽지 않은 도전 덕분에 그런 '엄마'들을 오롯이 만나게 된다.
같은 출판사가 2019년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김은화 지음)는 생애구술사 작업의 선배 격. 새로 나온 개정증보판에 실린 후일담도 눈길을 끈다. 첫 출간 이후, 사회적 반향만 아니라 모녀가 왜 싸웠는지 전한다. 모녀 관계, 모녀 이야기는 그렇게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