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딥시크를 필두로 오픈소스 방식의 인공지능(AI) 발전을 이뤄내고 있지만 한국에선 개인정보 보호 등 보안 문제에만 치중해 기술적 성과 분석이나 향후 전략 마련에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등 서방의 폐쇄형 전략과 중국의 오픈형 방식의 주도권 다툼 속에 우리나라의 장점인 반도체 기술력을 충분히 활용해 기술적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진수 주중한국대사관 과기정통관은 11일 베이징 코트라(KOTRA)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2회 KOSTEC 과학기술 세미나’에서 “딥시크 출시 이후 국내 반응이 다소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라며 “개인정보 보호 이슈가 부각되고 가성비 논란 등에 보도가 집중되면서 중국산 AI 서비스에 대한 경계심이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말 딥시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후 한국에선 이달 초부터 정부 부처를 시작으로 공공 기관을 비롯해 일부 민간 기업들로 딥시크에 대한 접속 차단, 사용 금지 조치가 이뤄졌다. 과도한 사용자 정부 수집과 이를 중국 정부가 들여다 볼 수 있어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름 등 개인의 기본 정보부터 키보드 입력 패턴까지 정보 수집의 범위가 광범위한데 이 정보가 딥시크를 거쳐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에 서버로 정보가 저장돼 우리나라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15일 오후 6시를 기해 데이터 유출 정황을 이유로 딥시크 애플리케이션의 국내 서비스에 잠정 중단 조치를 취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등 국내 모든 앱 마켓에서 딥시크의 다운로드가 중단됐다.
이 과기정통관은 “개인정보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하고 문제제기도 해야 하며 중국과 풀어나가야 하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우리 입장에서 기술적 성과 분석과 향후 나아갈 전략적 시사점에 대한 논의는 불충분했다”고 말했다.
딥시크가 기술 문서를 공개하고 오픈소스 전략을 택했다는 점은 오히려 우리에게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다. 이 과기정통관은 “네이버조차 생성형 AI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카카오는 자체 개발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중국 AI의 보안 문제를 지적하며 서비스 차단 이슈에 그치지 않고, 딥시크가 촉발한 기술적·산업적 논의를 우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오픈소스 방식의 AI 모델이 미국 등 서방의 폐쇄형 방식과 맞서고 있으나 결국은 오픈소스를 통해 AI 개발 생태계를 확대해 AI 기술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과기정통관은 “중국 AI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오픈소스 AI 트렌드는 ‘신당동 떡볶이 가게’가 소스 비법을 공개한 격으로, 굉장히 의외의 상황”이라며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 입장에선 구글과 경쟁이 어려우니 우군을 폭넓게 확보하겠다는 스마트한 전략을 세운 걸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오픈AI나 구글 제미니 등이 우위를 점했던 AI 시장 구도를 바꿔놓고 있다. 그는 “개방형 오픈소스를 활용해 한국이 빠르게 미국과 중국 등 선행주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우리도 오픈소스 방식을 채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보통신(IT) 업계의 사례를 봤을 때도 개방형 모델이 결국 시장에 우위를 점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이 과기정통관은 “1980~90년대 폐쇄형인 애플과 개방형인 IBM의 PC 표준 경쟁, 2000년대 폐쇄형인 애플 iOS와 개방형인 구글 안드로이드의 스마트폰 운영체제 경쟁에서 모두 상대적으로 개방형이 더 많은 생태계를 확보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딥시크 등장 이후 개방형 AI의 시장 장악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며 우리나라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역시 인재 확보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그동안 유리한 연구조건 등으로 전 세계 인재를 빨아들여 AI 주도권을 잡아왔고, 중국은 최근 인재 유출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해외로 나갔던 연구인력이 돌아와 자국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태는 실정이다. 이 과기정통관은 “한국도 국내 AI 교육과 연구환경을 개선하고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며, 국내 기업들이 AI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기회와 안정적 연구환경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