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요즘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더 필요하다. 결국 예술은 보편적이다. 러시아 발레 이야기가 한국 독자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로 지난해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김주혜(38)가 자신의 두 번째 장편 소설 『밤새들의 도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17일 나인트리 바이 파르나스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밤새들의 도시』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 책에 대해 “예술가와 예술 사이의 사랑 이야기이자, 어떻게 순수 예술을 하며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를 묻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밤새들의 도시』는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발레리나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뒤 어릴 적 꿈을 키웠던 옛사랑 같은 도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발레를 배경으로 한 데 대해 김주혜는 “9살 때부터 발레를 배웠고, 무용이 언제나 큰 열정을 줬다”며 “저의 능력은 발레리나가 될 수 없었지만, 감수성과 천성은 발레리나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땅의 야수들』 출간 계약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 편집자가 차기작을 물어봤을 때 발레에 관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예술을 다룬 소설을 내놓는 데 대한 부담은 없을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 문화에 심취했고 발레도 러시아의 발레를 좋아한다”라며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로 러시아를 배경으로 했는데 저와 무관하게 정치적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인 작가가 러시아 시베리아 배경 소설을 쓰려 했다가 우크라이나 네티즌의 공격을 우려해 출판을 접었는데, 그건 또 다른 검열이고 검열은 어느 쪽이든 민주적이지 않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다산북스를 통해 사전에 밝힌 이 책의 집필 배경에서도 “정치적 상황은 국경을 초월하고 인간의 공통된 감각을 회복시키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제 의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9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김주혜는 유창한 한국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밤새들의 도시』 한국어 번역본도 본인이 직접 읽고 일부 표현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해서 촉감을 잘 살릴 수 있다”라며 “이번 소설에 불꽃이 ‘훨훨’ 탄다는 표현을 넣었는데 춤·새·불을 모두 묘사할 수 있는 독특한 단어라 이 책의 중요한 모티프인 춤·비상·불꽃과 모두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영어로 작품을 쓰지만, 김주혜는 자신을 ‘한국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문학계에서 제게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는데, 한국의 시인, 소설가, 지성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주혜는 특히 “김지하 시인의 생애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그 시대를 살던 분들은 자기 믿음 때문에 감옥살이를 할 만큼 사명을 다하셨는데, 21세기 인류가 여러 문제에 당면한 것을 보고도 소설이나 쓰고 책 홍보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주혜는 “사회가 혼란할 때 예술을 말하는 게 사치일 수 있지만, 진정한 예술은 사치를 누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것”이라며 “예술은 위기의 시대인 지금 더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주혜는 오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 국제도서전을 찾아 ‘우리가 끝끝내 예술을 붙잡는 이유’를 주제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