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식비·주거비 등 역대 최대
5분위 고소득층선 45%에 그쳐
없는 이들에 더 큰 고물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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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적 의료비 지원 건수 1년 만에 51.1% 급증
서울 중구 고시원에 거주하는 남모씨(62)는 최근 마트 발길을 끊었다. 가파르게 오른 물가가 부담스러워서다. 대신 무료급식소를 돌아다닌다. 급식소에서 받은 햄이나 참치, 라면이 그의 주식이 됐다. 지난해 9월 고시원 월세가 3만원 올랐다. 그는 매주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야 한다.
남씨는 “병원비가 부담스러워서 제일 싼 고시원을 택했다”면서 “병원에서는 단백질을 어느 정도는 먹으라고 하지만 고기는커녕 파 한 단 사먹을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지난해 저소득층의 소비지출에서 필수재에 해당하는 식료품비와 주거비,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물가의 파고는 저소득층에게 더 크게 덮쳐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
경향신문이 23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소득 1분위(하위 20%)의 전체 소비지출에서 식료품과 주거비,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9.0%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관련 통계 개편 이후 가장 큰 비중이다. 지난해(67.8%)보다 1.2%포인트 높아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의 연 소비지출(1311만원)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5.6%(467만원)에 이른다.
특히 주거비와 의료비 비중이 지난해 큰 폭으로 늘었다. 소득 하위 20%의 주거비는 276만원으로 전체 소비의 21.1%였다.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큰 비중이다. 의료비로는 지난해 전체 소비의 12.3%인 161만원을 썼다.
식료품비와 주거비, 의료비는 생활 필수재에 속한다. 허리를 졸라맨다고 해도 쓸 수밖에 없는 항목이라 이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반면 고소득층인 소득 5분위(상위 20%) 계층이 지난해 이들 품목에 쓴 비중은 45.4%에 그쳤다. 1년 전(46.0%)보다 낮아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식료품비로 30.5%를 썼다. 소득 하위 20%보다 식료품비 비중이 5.1%포인트 작다. 주거비는 9.5%, 의료비 비중은 5.4%에 불과했다.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주거비와 의료비의 비율이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대신 소득 상위 20%의 교육비 지출 비중은 14.0%로, 하위 20%(1.2%)보다 10배 넘게 높았다.
저소득층에서 식료품·주거·의료비 비중이 늘어난 데는 고물가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3% 올랐다.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는 3.9% 상승했다.
주거비로 분류되는 주택, 수도, 전기 및 연료(1.7%)는 오름세가 소폭이었지만, 소득이 적을수록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점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의 부담은 다른 계층에 비해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병원 진료비와 의약품비 등을 포함한 보건물가 상승률은 1.9%로 2009년(2.2%) 이후 가장 컸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 가구 연 소득(1505만원)의 10.7%가 의료비 지출인 점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의 고통이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건수가 5만735건으로 1년 전보다 51.1%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은 소득보다 과도한 의료비가 발생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구에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