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는 삼성 플랫 스크린 텔레비전이었다. 대학교 4학년이던 경영학도 애런 실버맨은 내로라 하는 컨설팅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고, 월급으로 신형 텔레비전이며 가전을 사고도 생활비가 남는 생활을 했다. 친구들은 그의 집에 '신상' 가전을 보러 놀러오곤 했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어느날 저녁, 그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했다. "나, 행복한 거 맞아?"

질문을 하는 그 자신이 답을 알고 있었다.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약 20년 후인 지난 25일, 그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 한 레스토랑에 앉아 중앙일보를 만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고,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지 미쉐린이 "고품격 요리"라고 칭찬하며 별을 달아준 레스토랑의 오너셰프로서다. 그는 지난 10일 개막해 다음달 15일까지 제주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방한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의 부인도 함께였다.

지금은 행복한가.
"(활짝 웃으며) 행복하다. 물론 힘든 날도 있지만, 그건 삶의 디폴트다. 나는 내 직업을 요리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뭔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그게 우리 업의 핵심이다."
그 일을 위해 중요한 게 뭔가.
"내가 행복한 것. 일하는 우리가 행복해야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의 음식을 먹는 고객이 행복하다."

주방은 위계질서가 강하고 노동강도도 세지 않나.
"맞다. 다른 이를 못살게 구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성장 동력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선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서로 존중하고, 휴식시간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남을 못살게 구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게 행복하다."
공치사가 아니다. 실제로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총 3곳인데, 매니저 급에 해당하는 피고용인이 300명이다. 실버맨은 "매니저 레벨이 되면 자기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휴가를 낼 수 있다"며 "휴가자 수가 늘어도 서비스 질엔 영향이 없도록 숫자를 늘렸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그의 레스토랑엔 "일하고 싶다"는 이들이 줄을 선다. 그는 "고용을 하는 과정에선 면접을 엄청 까다롭게 본다"고 했다.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인지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 그가 또 하나 중시하는 게 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많을 수록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며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기쁨은 행복으로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한국계 부인 덕에 한식은 익숙한 편이지만, 이번 방한에서 그는 한국 식재료에 흠뻑 빠졌다. 그는 "전복은 원래도 좋아했는데 이번에 해녀분들이 요리한 전복죽을 먹고 황홀했다"며 "이번에 수셰프(sous chef, 주방에서 서열이 두 번째로 높은 요리사)를 포함해 팀을 일부러 데려왔는데, 다들 한식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실버맨 셰프 군단은 현재 우도 땅콩을 응용한 요리도 구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한 끼라도 더 먹기 위해 많이 걸었다"며 "일일오끼는 한 것 같다"고 했다.
실버맨의 요리에 만족하지 못했던 단 한 사람. 그의 부인이다. 그는 웃으며 "와이프를 처음 우연히 만났을 때 전화번호도 못 받았다"며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서 겨우 첫 데이트 신청을 했고,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 한국의 김치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를 했는데 첫마디가 '음, 별로네'였다"며 웃었다. 배춧잎의 수분을 증발시켜 칩처럼 먹을 수 있도록 한 전채요리였다고 한다. 그는 "한식을 한국에 와서 먹어보니, (왜 별로라고 했는지) 알겠더라"며 웃었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제주의 식재료가 이렇게까지나 다양하다는 데 놀랐다"며 "앞으로 한식을 더 깊게 탐구해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직후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관광객들 많이 가는 곳말고, 서울 토박이들이 좋아하는 진짜 식당들 소개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파인애플 앤 펄스엔 아마도 곧 제주산 식재료가 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