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깔 쌉쌀함…봄나물 귀족, 두릅

2025-04-04

박상현의 ‘찰나의 맛’

우리 민족은 절기에 따라 그 계절에 가장 적합한 음식을 먹는다. 이를 절식(節食)이라고 한다. 자연의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온 민족이 경험적으로 축적한 일종의 빅 데이터의 결과물이다. 나는 가끔 이 빅 데이터에 ‘왜?’라는 의문을 품는다. 어떤 식재료가 가장 많이 날 때 먹는 행위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이 논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두릅의 쓴맛, 사포닌 성분 때문

올해 정월대보름(2월 12일)에 오곡밥과 묵나물을 먹을 때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왜 묵나물일까? 묵나물은 지난해 거두어서 말려둔 나물이다. 아직 땅이 얼었으니 구할 수 있는 것이 묵나물밖에 없는 건 당연한데 굳이 계절성이 없는 음식에 계절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을까?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조상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얼었던 땅이 녹고 새로운 생명이 땅을 뚫고 나온다. 날이 풀리기 무섭게 산과 들은 봄나물 천지가 된다. 그렇다. 대식가였던 우리 선조들은 푸른 봄나물을 영접하기 전에 정월대보름을 기점으로 지겨운 묵나물을 털어 잡수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푸르고 싱싱한 봄나물을 맞이하기 위한 일종의 ‘창고대개방’ 행사로 결론 내렸다.

창고를 비웠으니 이제 채울 차례. 우리 민족은 정말 진지하고 악착같이 봄나물을 영접했다. 우선 가짓수가 방증한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란 풀을 ‘푸새’라 하고, 무·배추·상추·마늘·고추처럼 사람이 심어서 거둔 것을 ‘남새’라 하며, 이 모두를 통틀어 ‘푸성귀’라고 한다. 따라서 푸성귀라면 무엇이든 나물의 재료가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에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은 450여 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나물은 재료의 특성에 따라 먹는 부위가 달랐고, 먹는 부위에 따라 채집 방식 또한 달랐다. 뿌리째 먹는 나물은 캐고, 뿌리를 먹지 않고 잎을 먹는 것은 뜯고, 고사리처럼 줄기를 먹는 것은 꺾었다. 조리법 역시 재료의 특성에 따라 날것 그대로 사용하는 것, 데치는 것, 볶는 것 등으로 나뉘었는데 어느 방식을 선택하건 재료 본연의 향과 식감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맛을 내는 양념 역시 간장·된장·초고추장·소금 등을 최소한으로 사용했으며, 심지어 재료와의 궁합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이처럼 나물의 종류, 채집 행위, 조리법까지 섬세한 구분한 사례는 세계의 어떤 식문화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그래서 나는 K푸드의 마지막 히든카드는 나물이 될 것이라 항상 주장한다.

이처럼 다양한 봄나물 가운데서도 계급이 전혀 다른 나물이 있으니 두릅이다. 두릅은 여느 봄나물과 달리 땅을 뚫고 나오지 않는다. 겨울을 견딘 두릅나무의 새순이다. 고귀한 신분이고 생명 그 자체다. 두릅은 야생에서 자란 두릅나무의 순을 직접 따서 먹어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 경상남도 산청군에 속한 지리산 자락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는 산꾼을 따라 야생 두릅을 처음 접했다. 두릅나무 가지 끝에서 봉긋 솟아오른 새순을 ‘정아’라고 하고 가지 측면에서 나오는 새순을 ‘측아’라고 하는데 같은 나무에서 나는 새순이라도 정아와 측아는 향과 질감에 있어, ‘이게 정말 같은 나무에서 난 새순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물론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도 다르다.

야생 두릅나무의 정아를 살짝 데쳐서 소금 몇 알을 뿌려 먹으면 농축된 향과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몸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는 쌉싸름한 맛은 쓴맛에도 등급이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 쓴맛의 배후가 면역력 증진을 돕는 인삼에 풍부한 사포닌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욱 각별하다. 덕분에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유럽 사람들이 봄의 귀족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뽑은 것은 두릅의 진가를 몰라서 빚어진 오류가 분명하다.

하지만 산에서 자생한 두릅은 매우 귀하고 생산량도 적다. 요즘 시장에서 유통되는 두릅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생산한다. 비닐하우스라는 인공적인 시설물에서 새순을 틔운다는 사실만 다를 뿐 두릅이 가져야 할 향과 식감은 큰 차이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야생에서 자라는 두릅은 4월 한 달 정도만 채취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두릅은 이론적으로 따지면 일 년 내내 거둘 수 있지만, 역시 자연의 시간을 따른다. 그래야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물, K푸드 마지막 히든카드 될 것

덕분에 두릅은 여전히 4월의 귀족이다. 산림청에서 매년 발간하는 ‘임산물생산조사’에 따르면 두릅 생산량은 2021년 1383t, 2022년 1644t, 2023년 2035t으로 해마다 평균 20% 가량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두릅나무의 마디를 15㎝ 단위로 잘라 이를 수경 재배함으로써 두릅나무 한 주에서 10~15개의 두릅을 얻을 수 있는 ‘단마디 촉성재배법’이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가 이 재배법에 특히 적극적이다.

봄 두릅의 가치를 알고 이를 즐겨 먹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그들의 전통적인 조리법인 튀겨서 한입에 먹는 덴푸라로 즐기기 때문에 두릅의 크기를 작게 관리한다. 반면, 야생 두릅처럼 다양한 형태를 유지하는 한국은 두릅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강회를 선호한다. 실제로 두릅의 맛과 향을 즐기기에는 데침과 튀김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그럼 지금부터 4월의 귀족을 함께 영접해 보시라.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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