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어머니, 시험 때문에 머리가 셉니다

2025-12-05

“어머니, 요즘 들어 선비들의 풍속이 무너져 시험장은 몹시 위태로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만 다녀오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소자가 젊은 날, 백발노인의 응시를 비웃었는데, 이제 제 나이 쉰이 다 되어 흰머리가 덮였습니다. 더는 견디기 힘듭니다. 이제, 정말 그만두고 싶습니다.”

과거 보기 지친 늙은 아들의 고백

고통 공감한 어머니는 ‘일단 멈춤’

하멜표류기에도 조선 교육열 묘사

묵묵히 등 바라봐 주는 것도 좋아

1736년(영조 12년)의 어느 밤, 촛불 일렁이는 사랑방에서 중년을 훌쩍 넘긴 아들이 노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성리학의 거두 남당(南塘) 한원진의 문하생 강호보(姜浩溥)로, 1727년 북경 사행을 다녀와 ‘1호 독자’인 어머니를 위해 한글 연행록 『상봉록』을 남겼고, 한 편의 영화 같은 서사로 어머니의 행장(일종의 망자에 대한 전기)을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서자였다. 과거 급제는 유일한 사다리였지만, 거듭된 낙방은 지독하게 그를 소모했다. 더구나 동생 연보가 먼저 합격하기까지 했으니, 형으로서 의연하게 축하를 건네야 도리이건만, 꺼멓게 타들어 갔을 그 속이야 불문가지다. ‘시험 때문에 머리가 센다’던 조용한 절규에 어떤 위로인들 가당키나 할까. 한 인간이 느꼈을 비참함과 절망. 그저 어머니 앞에서나 무너질 수 있었으리라.

사극 장면처럼 재구성한 강호보 모자의 일화는 굳이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시험 날이면 어김 없는 한파, 무심코 꺼버린 알람, 듣기평가에 맴도는 이명까지, 시험장은 저마다의 긴장으로 위태롭지 않은 적이 없다. 이렇듯, 12월이면 우리는 공통의 기억에 꿰여 묘한 연대의 기류를 타게 된다. 시험 성적에 울고 웃던 시기를 누구나 한 번쯤은 통과했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이른바 ‘수능 시조새’다. 몇 년 전, 강의실에서 세대공감을 노리며 ‘나도 수능 세대에요~ 1994년 1세대’라는 무모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대들과 비슷한 시험을 겪어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인데, 학생들은 조상이라도 본 듯 찰나의 동공 지진으로 화답했다. 이보다 더 민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시조새의 화석 같은 기억에도 수능 날의 감각 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를테면 차가운 책상, 무겁고 탁한 공기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전 시험을 치른 후, 도시락을 여니 딱지 모양으로 접은 쪽지 하나가 톡 떨어졌다. ‘우리 딸 파이팅!’ 경쾌한 이 여섯 글자에 눈물이 왈칵 나와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랬다. 5교시, 그렇지 않아도 자신 없던 사회탐구 영역의 점수를 시원하게 우주로 날렸는데, 지금도 ‘시험을 망친 건 순전히 그 응원 쪽지 덕분’이라며 엄마 앞에서 뻔뻔하게 너스레를 떨곤 한다. 수험생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다. 가벼운 격려조차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거대한 산이 되어 짓누르곤 한다.

그러니 입신은 물론 가문의 사활이 걸렸던 전통 시대 수험생은 오죽했으랴. 헨드릭 하멜은 “아이들이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읽는다”라며 조선의 교육열을 묘사한 바 있다. 낯선 땅에 표류해 13년 20일을 머문 이방인이 그 많은 사연 중에 픽(pick)한 모습이니, 이 땅은 공히 ‘가르침에 진심’인 곳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다시 강호보와 어머니 김씨 부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들의 ‘과거 응시 중단 선언’에 대한 어머니의 응답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멈춤’이었다. 그녀는 자식의 백발 앞에서 ‘합격은 곧 성공’이라는 도그마적 확신을 어렵게 내려놓는다. 물론, 쉽지 않았다고 했다. 강호보는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고통을 ‘숙시(熟視)’해준 어머니께, 행장 곳곳에서 깊은 경의를 표했다. 삶의 성공이란 시대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뿐임을 간파한 그 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입시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면 좋으련만, 부모와 아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도는 인과관계로 묶여 온 지 오래다. 그 속에서 희비며 우월감과 죄책감이 뒤섞이고, 부모는 이 지점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 위에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얹은 건 아닌지, 잘 살피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맞물려 돌게 된다.

바야흐로 시험 시절인 지금, 예의 그렇듯 흔한 안부조차 조심스러워 ‘의도적 단절’을 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지금은 무심한 듯, 한 걸음 뒤에 서 있어도 좋을 때다. 아이가 불안한 숨을 스스로 고를 때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묵묵히 등을 바라봐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일단 멈춤’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김영죽 성균관대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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