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독일·일본軍 암호 푼 英 여성 비밀 요원 별세

2025-04-02

블레츨리 파크 근무 베티 웹 101세 타계

18세에 “요리 말고 국가 봉사를…” 입대

1975년까지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및 일본군 암호 해독을 맡아 연합국 승리에 기여한 영국인 여성 베티 웹이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대영제국 훈장(Order of British Empire)과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Legion d’Honneur) 수훈자인 웹은 지난 3월31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여성육군협회는 성명에서 “베티는 지난 수십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한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며 “우리는 2차대전 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국가에 봉사한 그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웹은 1923년 5월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드주(州) 와이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는 대신 어머니 등 가족의 홈스쿨링으로 기초 교육을 받았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고 이에 영국·프랑스가 독일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하며 2차대전이 발발했다. 개전 직후에는 나이가 어려 군대에 갈 수 없었던 웹은 1941년 18세가 되자 친구들과 함께 여군 부대인 ATS에 입대했다. 2차대전 당시 여성을 구성원으로 창설된 ATS는 ‘예비 의용군’이란 뜻으로 1926년생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2022년 서거)도 2차대전 말기 ATS 부대원으로 활약했다.

기초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해 육군 부대로 떠나며 웹은 “집에서 요리나 하는 것보다는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훈련을 마친 웹은 블레츨리 파크에 배치됐다. 런던 북서쪽에 있는 블레츨리 파크는 2차대전 당시 추축국 군대 암호를 해독하는 요원들의 집합소였다. 기밀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존재 자체가 베일에 가려진 곳에서 웹은 영국군이 가로챈 암호화된 독일군 메시지를 푸는 임무에 투입됐다. 흔히 ‘에니그마’라고 불린 독일군 암호 체계의 해독은 영국 등 연합국이 2차대전에서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41년 12월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이 영국 편에서 전쟁에 뛰어들었다. 영국 식민지인 싱가포르·홍콩, 또 자치령인 호주·뉴질랜드 등이 일본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블래츨리 파크는 일본군 암호 해독에도 나섰다. 나치 독일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웹은 독일군 대신 일본군 암호 해독 부서로 옮겨졌다. 워낙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그는 전쟁 말기인 1945년 5월 미국 수도 워싱턴에 파견돼 그곳에서 미군 요원들과 함께 일본군 암호를 푸는 작업을 담당했다.

블레츨리 파크는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지난 1975년까지 그 존재가 비밀에 부쳐졌다. 웹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실제로 그의 부모는 딸이 암호 해독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비밀이 해제된 뒤에야 웹은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책도 쓰는 등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차대전 종전 70년이 된 2015년 영국 정부는 그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했다. 2021년에는 프랑스 해방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가 주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00세가 된 2023년 5월 웹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 초대돼 객석 맨 앞 줄에 앉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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