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본부 의장(합참의장)이 44대 김명수 대장(해사 43기)에서 45대 진영승 대장(공사 39기)으로 지난 8월 30일 바뀌었다. 합참의장의 한국군 평시작전지휘권도 이날 0시 1분쯤 비화폰 전달과 함께 이양됐다.
5년 전 이맘때인 2020년 9월 23일에는 합참의장이 41대 박한기 대장(학군 21기)에서 42대 원인철 대장(공사 32기)으로 교체됐다. 이날은 바로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실종된 후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바로 다음 날이다.
당시 박 합참의장은 북한군 총격으로 이씨가 숨진 사실과 그 과정을 전혀 몰랐다. 한국군 작전지휘권이 2020년 9월 22일 자정을 기해 41대 박 합참의장에서 42대 원 신임 합참의장으로 이양됐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이를 보고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임인 원 합참의장이 이 사건을 개략적으로 보고받은 시점은 9월 23일 취임식을 준비하기 위해 출근한 후였다.
지금까지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고소·고발 대상에 관심이 집중됐고, 사건 당시 군 지휘라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문재인 정권의 고위 안보라인 인사들의 판단을 표적으로 한 정치적 감사에만 집중해서다. 감사원은 정작 그 사건 당시 대북 군사정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합참 정보본부의 보고라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에 따른 관련 간부들의 직무유기 등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은 외면했다.
국회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 등을 통해 나온 감청 특수정보(SI) 자료 등을 통해 보면 이씨는 2020년 9월 22일 오후 4시 30분쯤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방독면을 착용한 북한군이 이날 오후 9시가 넘어 북방한계선(NLL) 북측으로 3~4㎞ 해상에서 표류하던 이씨를 7.62㎜ AK-소총으로 사살했다. 그런 후 연유(휘발유)로 시신을 불태웠다. 화들짝 놀란 청와대는 23일 오전 1시부터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당시 이씨 피살을 비상사태로 인식한 곳은 합참정보본부보다 청와대가 먼저였다. 대북 감청부대인 777사령부와 SI 첩보를 공유하는 국가정보원이 이씨의 피격 사실을 청와대 사이버안보비서관실에 알렸다. 이씨의 표류 이후 행적을 계속 체크하고 있던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도 군 정보 유통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밈스·MIMS) 게시판에서 이를 확인했다.
그때까지도 북한군 총격으로 인한 이씨 사망은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은 물론 박한기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에게는 보고되지 않았다. 서 전 장관은 이 같은 사실을 A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B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긴급하게 전화한 후에야 잠에서 깨어나 알게 됐다. 서 전 장관은 정작 777부대 사령관을 지휘하는 대북 군사정보 최고책임자인 C 국방정보본부장(육군 중장)한테는 이와 관련한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회의 참석을 위해 청와대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뒤늦게 정보본부 보고를 비화폰 문자메시지로 받아야 했다.

합참정보본부장을 겸하는 C 국방정보본부장은 피격사건이 벌어진 날 오후 4시 30분부터 정부 각 부처의 정보관계관 회의를 주재하고, 이후 음주를 곁들인 만찬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만찬을 하고 있을 때 이씨는 표류해 생존해 있었다. 이때만 해도 청와대와 군, 국정원 등 관련 기관에서는 북한이 이씨를 구조한 후 나중에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낼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SI 첩보(감청정보) 보호를 위해 이씨가 북한에 표류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채 북한군 동향을 예의주시하기만 했다.
예상과 달리 ‘코로나19 공포증’에 빠져 있던 북한은 이날 오후 9시 넘어 이씨를 사살했다. 군과 국정원은 감청부대의 SI를 통해 이를 알게 됐다. 이 정보는 밈스에도 올라갔다. 그러나 합참 정보본부 보고라인은 먹통이었다.
감사원이 이씨 피격 정보의 전달이 합참 내부 어디에서 끊겼는지를 조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씨 피격상황 보고 누락에 관한 직무유기 책임자가 합참 정보본부의 과장급인지, 처장급인지, 부장급인지, 본부장급인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정치적 감사에 집중하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보고 누락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감사원이 문제 삼은 이씨의 월북 가능성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곳도 합참 정보본부였다.
C 정보본부장은 국회 정보위 등에서 이씨 피격 상황과 관련한 SI 첩보를 평소와 다르게 술술 말했다. 그러자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한미연합군의 비밀 취급사항인 SI 첩보 상황을 대외에 과도하게 언급하고 유통되게 해 ‘보안위기’를 야기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징계를 국방부에 지시했다. 국방부는 C 정보본부장에 대해 감봉 징계를 내렸다가 나중에 이를 철회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당시 합참 수뇌부는 공백 상태였다. 이씨 피살 이후 사건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2020년 9월 22일 자정(0시)은 합참의장 권한이 박한기 육군 대장에게서 원인철 공군 대장한테 법적으로 이양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박 의장은 22일 자정까지 피격사건 상황을 보고받으며 대응을 지시하다가 자정 이후부터는 작전 권한을 신임 원 의장에게 넘겨줘야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씨가 피살된 시점에서 합참의장 공백과 군 정보 보고라인 먹통 상황이 겹쳤다. 이날은 서 전 장관 역시 9월 18일 취임 후 불과 나흘째 근무일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군의 SI 첩보는 물론 정보 병과 외에는 일반 장교 상당수가 명칭조차 잘 몰랐던 밈스의 존재와 밈스 정보의 전파과정까지 노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밈스의 전파체계는 2급 군사기밀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재판의 발단은 정권이 바뀌자 해경과 국방부가 입장을 변경하면서 시작된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였다. 이와 관련해 해경과 국방부의 입장 번복은 용산 대통령실의 압력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윤석열 정권이 해경과 국방부에 가한 부당한 압력을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첩보와 정보 판단도 번복하는 군의 무소신은 바람 부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갈대와 같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