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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정 국정협의회 4자 회동이 20일 손에 잡히는 성과 없이 끝났다. 구성에 합의한 뒤 42일 만에 어렵사리 열렸지만 기업의 경쟁력 회복 차원에서 재계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주 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추가경정예산 편성, 연금 개혁 등 중점 현안에서 최종 타협에 실패했다.
여당은 야당의 상속세 공제액 상향을 받아들였고 야당은 강행 처리를 예고한 연금 개혁을 계속 논의해가기로 한 게 그나마 성과로 꼽힌다. 큰 틀의 공감대가 있는 상속세 면세 한도 상향, 추경 편성 등에서 빅딜이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여야정의 신경전은 모두 발언부터 시작됐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2시간)근로시간특례조항 포함되지 않는다면 반도체특별법이 아니라 반도체보통법 불과하다”며 국회의 전향적인 논의를 강조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대표께서 1극 체제로 제일 실세인 줄 알았는데 정책과 관련해선 진성준 정책위 의장이 가장 실세인 것 같더라”며 52시간 예외의 강성 반대론자인 진 의장을 애둘러 비판했다. 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도체업계를 지원하고 필요한 것은 추가로 유연하게 해야 한다”며 “(반도체특별법이) 일괄타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안하겠다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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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에서 여야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이슈도 조금씩 핀트가 어긋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제1 우선순위를, 민주당은 추경 편성에 더 무게를 뒀다는 후문이다. 상속세 공제 확대는 정부·여당이 추진해온 최고세율 인하(50%→40%)와 자녀 공제액(5000만 원→5억 원) 상향을 양보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야당은 그동안 정부·여당의 최고세율 인하과 자녀 공제액 상향 주장을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했다. 대신 상속세 일괄공제를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공제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당 차원에서 추진했다. 여당은 최고세율 인하 및 자녀 공제액을 양보하는 대신 우선 야당의 일괄·배우자공제를 수용해 계류 중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합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속재산이 18억 원 이하인 납세자는 세금을 내지 않게 된다.
추경과 상속세 공제 확대에 여야정 모두 큰 틀의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추경만 해도 편성 과정에서 규모와 대상·범위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불가피하다. 야당이 밀고 있는 추경 규모는 34조 7000억 원인데 사실상 이재명 대표의 1인당 25만 원 지원과 같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만 13조 1000억 원에 달한다.
상속세 공제 확대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돌발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모든 관심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 쏠린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한 법안이나 추경마저도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출렁일 수 있다”며 “완성된 합의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견해 차를 줄였다면 다른 이슈나 정쟁과는 따로 놓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합의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연금 개혁도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놓고 여당은 42%, 야당은 44%로 대치하는 상황에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44%의 야당은 국민연금 고갈을 5~6년 늦추는 효과에 불과해 이번 조치로 연금 개혁 자체를 마무리하려는 야당안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득대체율 44%안을 단독으로 밀어붙이려던 야당이 주말을 두고 여당과 논의를 이어가기로 해 파국은 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에 52시간 예외 조항도 장외전으로 확대되며 서로 네 탓을 반복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금 개혁은 여당의 양보로 모수 개혁을 우선하고 52시간 예외 조항은 야당이 양보하면서 타협의 불씨를 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야권 인사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52시간 예외는 민주당이 양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각에서는 여야 간에 추경 편성과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의 빅딜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