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棺)은 세상을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안식처다. 유족은 떠난 이를 위해 아낌없이 호화로운 소재와 장식으로 꾸며진 안식처를 준비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장례 방식과 상관없이 고인이 한 줌의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은 변치 않는다. 고인의 넋을 기리면서도 지속 가능한 장례가 주목받는 이유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골판지 관’이다.
일본만큼 골판지에 진심인 나라가 있을까? 일본은 지진 재해 시 대피소에서 유용하게 써온 골판지를 친환경이란 이름으로 2021년 도쿄 올림픽 선수촌 침대로 설치한 바 있다. 관은 다른 이야기다. 아무리 환경친화적인 장점이 있다 한들 고인의 마지막을 골판지로 만든 관에 ‘모신다’는 행위는 우리네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2006년부터 ‘에코핀’(ecology+coffin)이란 골판지 관을 제작해온 윌라이프 주식회사 대표 마스다 스미히로가 이런 의문에 답했다. 왜 하필 골판지여야 했을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연간 고령 사망자 수가 약 159만명에 달한다. 반면 도심 속 화장장은 기피시설로 그 수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마스다 대표는 “화장장의 처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골판지 관을 개발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밝혔다.
골판지 관을 기존 나무 관과 비교 테스트한 결과, 화장장에서 사용되는 연료가 약 25% 감소했고, 하루 처리량도 두 배로 증가했다. 그는 “골판지 관의 등장으로 새로운 화장장을 짓지 않아도 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고 다이옥신 배출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한 나무 관을 사용한 일반적인 화장 장례식은 한 번 치르면 약 200㎏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는 한 사람이 1년 동안 호흡하면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량과 맞먹는다.

골판지 관은 어떻게 만들까? 에코핀의 경우 ‘트라이월’(Triple Wall) 강화 골판지라는 삼중 구조 골판지를 소재로 사용한다. 1953년 미국에서 발명된 소재로 자동차를 올려놔도 찌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높으며 나무 상자나 합판보다 무게는 20%, 부피는 15% 절감할 수 있다.
경제적인 면 또한 나무 관에 비해 유리하다. 기존의 관은 나무 합판으로 제작된다. 오동나무, 떡갈나무, 편백나무 순으로 고가이며 그 외에 가공이나 장식에 따라 추가 비용이 더해진다. 최소 40만원에서 단단한 편백나무로 호화롭게 꾸민 관은 2000만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한다. 골판지 관의 가격은 장의사 납품 기준 2만엔(20만원)부터 시작한다.
에코핀은 소재가 골판지라고 해서 택배 상자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감싼 듯한 우아한 느낌마저 든다. 마스다 대표는 “골판지 위에 식물성 재생원료로 만든 레이온(인견) 100% 천을 붙인다. 레이온은 실크 같은 광택을 낸다”고 말한다.
윌라이프는 에코핀 제품이 1개가 판매될 때마다 나무 1그루를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07년부터 몽골 화재 피해 지역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60만그루 넘는 나무를 심었다. 마스다 대표는 “소비자들이 장례를 치르는 행위가 곧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이어져 지구 환경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바로 에코핀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