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마약’ 펜타닐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신(新)아편전쟁’에 일본까지 휘말려 들었다. 펜타닐 원료를 밀수한 중국 조직이 일본 나고야에 거점을 두고 활동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2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중국계 마약조직이 일본을 마약 집배송과 자금 관리를 위한 중간 기지로 삼은 의혹을 포착하고 본격 조사에 들어갔다.
중국 마약조직은 2021년 6월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FIRSKY’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이듬해 9월 나고야로 본사를 옮겼다. 중국 마약조직은 이렇게 일본에서 주식회사로 위장한 후 미국·중국 내 계열사를 통해 펜타닐 원료를 해외에 위장 판매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보스”로 통친된 중국인 남성이 대규모 거래를 승인하거나 판매 대금을 암호화폐로 수령하는 등 일본 활동을 지휘한 사실을 DEA는 포착했다. 이 중국인 남성의 행방은 현재 묘연하다.

DEA는 이 남성의 행방과 은닉 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가상화폐 거래 내역을 분석하며 조직 전체의 유통 경로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FIRSKY가 과거 일본 우편을 통한 국제 소포 발송을 홍보했으며, 일본 경유해 원료를 해외로 우회 수출한 정황 역시 잡았다고 한다. 일본이 단순한 경유지가 아니라 국제 밀수망의 ‘허브’로 활용됐다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 DEA는 2023년 중국 우한의 화학 기업 ‘후베이 아마벨 바이오테크(湖北精奥生物科技)’을 적발했는데, 이 과정에서 FIRSKY가 동일 조직의 해외 거점이라는 단서를 찾아냈다.

일본 경찰청은 일단 “펜타닐이 일본 국내에 불법 유입됐거나 일본을 경유해 수출되고 있다는 상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펜타닐 원료 자체에 대한 합법적 공업용 수요도 있어 불법 여부를 특정하기 쉽지 않고, 일본을 통한 선박 수송은 언어 장벽과 은폐 행위로 인해 추적이 까다롭다는 수사상의 걸림돌이 있다고 전문가들을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은 근래 들어 일본과 마약수사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조지 글라스 주일 미국 대사는 지난 6월 말 X(옛 트위터)에 “일본과 협력해 펜타닐 전구체 물질의 일본 경유 유통을 차단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7월에는 존 스콧 DEA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사관을 일본에 불러 대책을 협의했다고도 공개했다.

DEA는 해외 직접 수사 권한은 없지만, 이번 사건이 멕시코·동남아시아 등 다수 국가와 연계된 국제 밀수망의 일부인 만큼 일본 경찰과 세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등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신문은 “UNODC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과 아시아 각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공동 작업반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