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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 섰다. 루브르 박물관의 대대적인 개보수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그 계획의 하나는 ‘모나리자’만을 위한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해서, 이 작품만 볼 관람객은 별도의 티켓으로 메인 박물관을 통하지 않고 바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만큼 오직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기업인 75조에 매각 주장
지난 2020년에는 한 프랑스 기업인이 프랑스 정부가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모나리자’를 해외에 매각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이때 그는 ‘모나리자’ 가격으로 무려 500억 유로(현재 환율 기준 75조원)를 제시했다. 대한민국 정부 예산의 11%를 넘는 액수다. 그는 ‘모나리자’의 엄청난 관광 수입 효과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오로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며, 각 관광객이 머무는 동안 평균 1500유로(225만원)를 쓰니 ‘모나리자’는 매년 30억 유로(4.5조원)를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도난 사건 전까진 평범한 명작
범인 잡히며 달리 등 패러디
1963년 미 특별전 160만 관객
‘유명함’의 편견은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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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산이 논리 비약적이라는 반박도 많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것에는 토를 다는 이가 없다. 20세기부터 미디어의 발달로 유명함과 경제적 수익의 관계는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일찍이 1971년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가 넘쳐날수록 어텐션(attention, 주목 혹은 관심)은 희귀한 자원이 된다”고 했다. 또 1997년 언론인 마이클 골드하버는 “새로운 경제의 통화는 돈이 아니라 어텐션이다”라고 했다. 희귀 자원인 주목을 많이 받을수록, 즉 유명할수록 경제력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21세기에는 이것이 유튜브 콘텐트 조회수에 비례한 수익으로 공식화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건축가 겸 경제학자 게오르크 프랑크는 주목도나 유명함이 자본의 속성을 지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다. 루브르에서 별도의 전시실을 갖게 될 ‘모나리자’야말로 이런 ‘유명함의 승자 독식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 이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모나리자’는 대체 왜 이렇게 유명한가?
사실 ‘모나리자’가 지금처럼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다. 그 전에 시시한 그림으로 취급받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생전에 이미 잘 나가는 화가이자 공학자였고, 특히 그가 인물을 표현할 때 쓰는 스푸마토 기법은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스푸마토는 ‘연기 같은’이라는 뜻으로, 색채와 명암의 경계를 흐릿하고 미묘하게 처리해서 입체감을 살리면서 부드럽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모나리자’는 그런 스푸마토 기법을 특히 잘 활용해 인물의 신비로운 미소를 빚어내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독보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사람인 레오나르도는 1517년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 가게 되었다. 그때 그가 1506년까지 작업하다 미완성으로 두었던 ‘모나리자’를 들고 갔고 프랑스에서 완성한 후 1519년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국왕은 ‘모나리자’를 물려받은 레오나르도의 제자에게서 그림을 구입했다. 이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나리자’를 비롯한 왕실 소장 예술품은 모두 국민 소유가 되었다. 이후 왕궁에서 공공 박물관으로 변모한 루브르에서 1797년부터 전시되기 시작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면서 ‘모나리자’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탁월한 초상화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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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만든 것은 20세기 초에 일어난 도난 사건이다. 1911년 8월의 어느 날, 루브르의 학예사들은 ‘모나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작품을 벽에 고정하지 않았고 연구나 보존 처리를 위해서 학예사가 신고 없이 떼어 갔다가 돌려놓는 일도 많아서 없어지고도 하루가 지나서야 도난당한 줄 알았다고 한다. 당시 보안이 얼마나 형편없는가 하면 루브르에서 자잘한 유물을 훔쳐가는 게 취미인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2년 후인 1913년 12월에야 ‘모나리자’를 훔친 진범이 붙잡혔는데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루브르의 인부로 일하던 빈센초 페루자였다. 그는 ‘모나리자’를 2년 동안 자기 방에 숨기고 있다가 이탈리아의 대표 미술관인 우피치에 팔려고 했지만 미술관의 신고로 붙잡혔다. 우피치는 ‘모나리자’를 루브르로 돌려보냈다.
페루자는 재판 과정에서 “이탈리아인이 그린 그림이니 고국에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해서 훔쳤다”고 주장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모나리자’는 합법적으로 프랑스의 소유가 된 것이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족 감정이 이성을 누르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페루자는 이탈리아에서는 애국 영웅 대접을 받으며 징역 7개월의 비교적 가벼운 형을 살았다.
‘모나리자’의 실종과 회수를 둘러싼 이 모든 일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사건 자체도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데다가 20세기 초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당시 프랑스에 모여있던 전위예술가들이 ‘모나리자’를 작품의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변기를 작품으로 내놓아 악명을 떨친 마르셀 뒤샹이 1919년 ‘모나리자’ 프린트에 콧수염을 그리고 외설적인 어구를 넣은 작품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살바도르 달리 등 여러 작가가 ‘모나리자’ 패러디를 내놓았다.
유명함의 편견 벗고 감상해야
또한 프랑스의 뒤를 이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등극한 미국에서 1963년 ‘모나리자’ 특별전이 열려 160만 명 구름 관중을 모으고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 등이 ‘모나리자’ 패러디를 제작하면서 ‘모나리자’는 더욱더 유명해졌다.
한마디로 ‘모나리자’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된 데에는 그림 자체의 뛰어난 작품성도 있지만 ‘운발’이 강력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도난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 거기에 영감 받은 미술가들이 패러디를 생산해낸 것.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문화예술의 중심지에서 벌어진 것은 운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프랑크가 말한 대로 ‘유명함’은 자본의 속성을 지닌다. 돈이 일단 축적되면 불리기가 쉬운 것처럼, 유명해지면 더욱 유명해지기 쉽다.
‘모나리자’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사실 그만큼 훌륭한데 유명하지 않은 작품도 많다. 그러니 우리는 미술이든 문학이든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유명함’의 편견에 너무 갇히지 않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