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이 나라에는 ‘들이받음’이란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 들이받음의 사회적 충격과 파장 그 폐해도 심각하기만 하다.
역사적으로 ‘들이받음’을 간단히 살펴보면 멀리는 왕건이 궁예를 들이받아 왕권을 차지하였고, 이성계는 고려를 들이받는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하였다.
근래에는 김영삼이 노태우를, 이회창이 김영삼을 들이받아 대권을 움켜쥐었거나 그 근처까지 갔다.
들이받음의 압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그는 부장검사 시절부터 검사장도 들이받고, 검찰총장이 되어서는 대통령도 들이받더니 기어코 대권을 차지하고야 말았다. 비록 망상 계엄을 하는 바람에 들이받지 않음만도 못한 처지가 되긴 하였으나 어쨌든 들이받아 대통령까지는 해 먹었고, 한동훈은 윤석열을 들이받았다가 비록 머리에 커다란 혹은 달았으나 그래도 대권 반열에는 올랐다.
그래 여기까지는 ‘급’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급’이 되지 않는데도 일단은 들이받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조약돌 유삼영은 윤석열과 이상민을 들이받고 국회의원 공천장을 움켜쥐었고, 자갈급 김태우는 조국을 들이받아 구청장까지 해 먹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들이받음”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였다.
국회에서는 자질 없는 의원들이 장·차관을 불러들여 ‘유튜브용 쇼츠’ 의정활동을 해재끼고 있고,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욕설도 서슴지 않으며 이를 용기라 우겨댄다.
야당 국회의원은 대통령이란 호칭을 잊은 지 오래이고, 여당 국회의원들도 대통령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 없이 오로지 지지자들과 차기 공천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 역시 다양한 ‘들이받음’의 아류이다.
이젠 연일 어느 산하의 어느 조약돌이 태산을 들이받았다는 뉴스가 워낙 많아서인지 초돌, 중돌도 태산급 교사를 들이받는다. 하위공직돌은 상급자의 정당한 업무지시에도 ‘다른 곳에 보내달라’며 들이받는다고도 한다.
이제 이 나라 온 산천의 모래, 자갈들도 모두 여차하면 태산을 들이받을 태세이다.
최근에는 포도청 포교가 대사헌 대리에게 전화하여 막말을 해대고 포교로부터 반찬 주워 먹다 들킨 고양이만큼 호되게 당하는 대화가 노출되어 급기야 대통령으로 하여금 해당 포교의 뜻이 관철되어 형조 관아에 긴급 투입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정당한 ‘들이받음’은 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 우리에게 ‘들이받음’의 문화가 없었다면 이만한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특히 전 지구상에서 손꼽을만한 민주국가를 건설한 것은 우리의 ‘들이받음’의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때의 들이받음은 부정에 대한 정의의 ‘들이받음’이었으나 최근의 들이받음은 평범한 자갈이 어딘가의 주춧돌로 가기 위한 영악한 수단으로 사용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 이제 우리 사회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한번 뒤돌아보자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서 진나라 상앙을 언급하며 “남문에 대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커다란 상금을 주겠다”라고 큰 방을 붙였으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어느 아둔한 자가 대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 상앙은 거액의 상금을 그에게 지급하였다, 그 이후 진나라에는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이는 부국강병으로 이어져 결국 천하통일의 기반이 되었다.
국가에는 반드시 국가라는 무게에 걸맞은 令(영)과 權威(권위)가 있어야 한다.
영과 권위가 사라지고 신상필벌이 사라진 조직과 국가는 반드시 쇠퇴하게 마련이다. 앞으로도 계속 들이받는 자들은 나타날 것이고 그 폐해는 심각할 것이다.
이제 은퇴하여 들이받을 곳도 없는 나는 주말에 모악산에 올라
아무 바위라도 한번 들이받고 싶다.
이성순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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