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베지 강의 해넘이

2024-11-13

일본식 조어(造語) 냄새가 물씬한 관광이라는 낱말을, 볼 관자에 빛 광자로 풀어(觀光), ‘빛을 보다(See the light!)’라는 재미있는 직역(直譯)도 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 세계 제일로 가난했던 우리들에게, 해외관광은 사치요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그저 꿈이었다. 80년대 초 5공 때 해외여행 자유화가 선포되었지만, 국제정세와 주머니 형편으로 대부분 국민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배낭을 메고 당당하게 나서는 MZ 세대와 달리, 여행에 서투른 꼰대들이 패키지여행에 매달리는 이유다.

필자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본 것도 1987년 교정학회, 캐나다 쪽은 1996년 Roth/ Willimams 학회 끝에 딸린 패키지였다. 보면 볼수록 젊어진다는 “나이야 가라(Age, go away)!”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폭소가 터졌던 게 생각난다.

환갑기념 마추픽추 여행에서 만난 이구아수 폭포는 그 광대한 크기와 수량에 감탄 불금으로, 필자의 연상(聯想) 기억법에 따라, ‘이구아나의 눈물’로 입력해두었다.

김찬삼의 3대 폭포 중에 이제 하나 남은 빅토리아를 버킷리스트에 찍어두었는데, 코로나에 죽죽 밀리더니만, 지난 3월 그만 ‘중환자실 입원’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말리는 아이들과 뜨악해하는 주치의 눈치를 보아가며, 6개월 동안 매일 8천 걸음 이상을 걸으며 다릿심을 살려, 어렵게 아프리카여행을 결단하였다. “It’s now or never!”, 유행가 가사처럼 80대의 포기는 단념의 막장 아닌가?

여정 닷새째, 잠베지(큰 강)의 Sunset Cruise. 잠베지는 본래 잠비아와 앙골라의 접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었는데, 언젠가 대륙 남단부가 융기하는 바람에 물길이 막혔다가, 동쪽으로 탈출구가 뚫리면서, 모잠비크를 지나 인도양으로 유입되는,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2,740km의 강이 되었다 한다. 이렇게 거대한 지각변동의 결과로 강 중류에 빅토리아 폭포의 환상적인 절경이 탄생한 것이다.

오후 4시 쯤 짐바브웨 강나루를 출발한 배는 상류를 향하여 서서히 서쪽으로 전진하다가 열여섯 마리 코끼리 가족을 만났다. 수로(水路) 오른 편 꽤 넓은 섬으로 강을 건너는데, 어른들이 길 다란 코로 다리 짧은 아기 코끼리들 배를 툭툭 쳐가며 띄워준다. 영화 모감보(1953)에서 봤던 하마 떼는 흘러간 추억일 뿐, 먼발치로 하마와 악어가 드문드문 보인다. 강물이 그려내는 수평선도 신기하지만, 배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니까, 석양을 받은 윤슬이 핏기 머금은 금빛으로 출렁거린다. 오른편에는 아프리카 특유의 맑은 오렌지색 하늘을 배경으로, 야트막한 능선에 줄이어선 나무들이 검은 수묵화를 그린다. 이윽고 홍시의 맑은 속살 같은 주황빛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지긋이 침몰한다. 반짝이는 윤슬과 도열한 나무의 실루엣과 저무는 태양, 이 세 가지 파스텔 톤의 빛깔이 빛의 향연을 연출한다. 관광이라 하는 것은 곧 ‘빛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그냥 직역이 아님을, 잠베지 강에 와서 뒤늦게야 깨닫는다. 

빛에 함빡 홀려있는 사이에, 무한리필 음료수 중에 단 하나 받아 둔 차디 찬 ‘잠베지 캔 맥주’가, 어느덧 미지근하게 식어버렸다.

아프리카 여행의 로망은 사라져가는 지구의 맨살을 만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빅토리아 호수와 희망봉과 식탁의 산(Victoria Falls, Cape of Good Hope, Table Mountain). 발견자 리빙스턴은(1855) 거친 굉음과 거대한 물안개로 ‘천둥치는 연기(Mosi-oa-Tunya)’로 불리는 폭포에 빅토리아여왕의 이름을 붙였다. 낙차가 108m 폭 1,708m에, 다양한 물 떨어짐과 40여 마일 협곡의 아름다움이, 세계 3대 폭포 중에 단연 으뜸이다. 바톨로뮤 디아즈가 발견한(1488) 아프리카의 최남단이자 인도항로의 전환점인 희망봉에서, 온도 차 4-5도인 대서양 찬물과 인도양 따뜻한 물이 만난다.

다가마가 1498년 Cape Point를 발견하여 위치를 바로잡았지만(남위 34도 21’24”, 동경 18도 29’57”), 두 곳이 모두 ‘Must See Point’요, 정상에 올라서면 대서양에서 거침없이 불어오는 강풍에 아차 하는 순간 넘어진다. 테이블마운틴(1067m)은 과연 신들의 식탁답게, 탁 트인 전망은 물론, 12 사도가 늘어선 아기자기한 능선과 깎아지른 계곡이 일품이다.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날다 보면 신의 식탁 닮은꼴이 3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지각변동의 경이다. 배낭 멘 MZ들의 트레킹에 대박인 이 세 곳이 주 요리(Main Dish)라면, 잠베지 해넘이는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에 빠져들 전체요리(Appetizer)다. 아프리카 자연은 그 자체로 종교화다. 중간에 두바이에서 머문 하루는 아프리카의 자연미를 돋보여주기 위한 인공 조각품에 불과했다.

다만 한 시간 거리 교외에서 경험한 사구(Dune) 드라이브에서, 동영상으로만 보던 Buggy Riding과 샌드 슬레이의 스릴을 만끽하였다. 이 경험은 짭짤한 부식(Side Dish)이라고 치자. 이리하여 모험으로 시작한 아프리카 여행은 에피타이저에 메인 디쉬, 그 위에 사이드 디쉬 까지, 풍성한 ‘풀코스 정식’의 성찬으로 끝났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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