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세상의 이치

2026-01-01

이재명 정부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국무회의 업무보고 생중계가 요즘 관심거리다. 국민의 성숙한 집단지성을 믿는다며 국정 전반에 걸쳐 상세한 질문을 던지는 대통령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25년이 가기 전에 희망찬 두 가지 소식이 들렸다. 북의 노동신문 개방과 이관술 선생 무죄 판결이다. 북의 노동신문 개방은 국무회의 생중계가 단초가 되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북의 노동신문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일반인들은 노동신문이 북의 ‘특수자료’에 해당하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북의 ‘특수자료’는 국가보안법 7조 5항에 따라 ‘북을 찬양·고무할 목적으로 하는 문서·도화(그림)나 기타의 표현물’을 이적 표현물로 규정하여 국민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왔다.

하지만 1990년 통일을 완성한 서독은 참으로 현명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1969~1974) 주도로 고립 대신 접촉·협력을 통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동방정책을 도입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언론·정보 교류 확대이다. 언론의 개방과 인적 교류 확대, 경제 지원 등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교류를 확대 추진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통일 독일을 완성했다.

방송에 나온 홍진석 통일부 평화교류실장은 “노동신문 개방 문제는 진보 정부뿐 아니라 보수 정부에서도 국정 과제로 설정해 추진했었다”며 “다만 실제 추진 과정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분들이 있어서 정책적인 동력을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남북 개방 문제는 진보와 보수 문제가 아니다. 이념을 넘어 초당적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늦었지만 대환영하며 앞으로 더 많은 교류 확대를 기대해본다.

또 하나 좋은 소식이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2025년 12월 22일 범서 입암이 고향인 학암 이관술 선생에 대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가슴 벅차게 환영한다. 유족 신청인 손옥희 씨는 최후진술에서 “외할아버지 이관술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유가족이 겪어왔던 상처를 치유할 뿐 아니라 정의롭게 역사를 바로 세워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관술 선생은 일제강점기 교육 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일제에 대항해 싸웠으며 해방 후 여론조사에서 민족을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 5인 중 한 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방 후 미국은 남북을 분단하고 남한을 점령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해방 직후에 이관술 선생은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의 간부였다.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조선정판사 인쇄시설을 이용해서 가짜 돈을 찍었다는 누명을 씌워 이관술 선생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남조선로동당은 경제적 혼란을 일으키는 파렴치범 집단으로 낙인이 찍혀 희생양이 되었다. 미국의 만행이다. 이관술 선생은 빨갱이로 몰려 대전 형무소에 구속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다.

그 후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빨갱이 자식이라는 서러움을 2025년 12월까지 받아왔다. 이는 국가권력이 만들어낸 중대 범죄 행위이자 심각한 폭력이다.

이제 결정은 났다. 이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가장 먼저 울산교육청이 나서야 한다. 울산교육청은 2019년부터 일제강점기 민족교육 현장과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교육운동가를 발굴하고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역사 찾기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박재민, 안태로, 이효정, 최현배, 성세빈, 이우종, 조영진 선생 등 7인의 울산교육 독립운동가를 찾았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관술 선생이 여기에 포함돼야 한다.

국가보훈처에서도 독립유공자로 합당한 서훈을 내려야 한다. 이관술 선생의 생가 복원은 물론이고 유적비를 제대로 세우고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이관술 선생과 가족에 대한 국가의 중대 범죄 실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런 것들이 밑바탕이 될 때 좀 더 품격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반공’이라는 프레임은 이젠 한물갔고, 그러니 낡은 이념논쟁일랑 이젠 그만하자. 반공과 빨갱이는 중세 시대 마녀사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교에서는 집착을 내려놓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라며 분별심을 경계한다. 또 양자역학에서는 규정짓는 것을 경계한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단지 확률로 존재할 뿐이다.

서민태 사회운동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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