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막중한 임무를 지고 취임하게 된다. 고착화된 저성장 경제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극도로 분열된 사회의 통합을 도모하는 일까지 모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앞선 정부에서 후퇴했던 노동·소수자·기후환경·여성 정책을 정상화하는 것도 새 정부가 할 일이다. 새 대통령에 대한 각계각층 시민들의 바람을 들어봤다.
경제 회복부터 최우선으로

서울 관악구에서 김치찌개 식당을 운영하는 유덕현씨(67)는 “지금 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경제 회복을 최우선으로 바란다”며 “요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어 삶의 의욕과 희망마저 상실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소상공인들은 장사가 안 되는 걸 넘어 거의 정지 상태이고, 거리엔 빈 점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새 정부와 여야 정치인들이 화합해서 정치적 불안을 극복하고 우선 경제부터 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실적인 청년 주거 정책을

대학생 김영재씨(23)는 “20대 여성으로서 대선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 중 저와 관련된 정책이 심각할 정도로 없다고 느꼈다”며 “당선된 후라도 제대로 된 여성 정책을 내놨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청년 주거·노동 정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씨는 “LH 청년전세임대는 매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SH 청년안심주택은 보증금 수준이 너무 높다”며 “정부에서 막상 ‘청년 복지’라고 정책을 만들어도 정작 이용하기는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경쟁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도 포괄임금제 등 노동 문제를 목격했다”며 “청년들이 인간다운 삶,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너무 큰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을 새 정부가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후퇴하는 여성 정책은 그만

40대 여성 이하영씨는 “그동안 여성 정책이 계속 후퇴해왔다”면서 “여성들은 광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오며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정부가 ‘이대남(20대 남성)’ 눈치를 보면서 성평등 기조를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다”며 “새 대통령은 분명한 관점을 갖고 성평등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새 정부가 여성 유권자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정책으로 반영하기 바란다”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 성매매 여성 처벌법 개선, 임신중지 관련 법안 마련, 돌봄 정책 등 과제가 많고, 누구한테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확충되고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면 좋겠다”고 했다.
차별금지법·동성혼 꼭!

바이섹슈얼 송인교씨(26)는 “새 대통령은 성소수자 관련 의제를 시기상조라며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성소수자가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임을 사회가 인지하기 위해선 정권이 얼마나 다루고 가시화하는지가 중요하다. 차별금지법과 동성혼이 꼭 중요하게 다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송씨는 특히 이번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의 혐오 표현이 생방송되는 것을 보며 “권력을 가진 사람, 스피커를 가진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회 전반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느꼈다”면서 “혐오 발언을 당당히 하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더더욱 약자를 옹호하고 평등과 인권에 힘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자 위한 법과 제도를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40)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 대통령을 바란다”고 했다. 3일 그가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불에 탄 공장 옥상에 오른 지 513일이 됐다. 박 부지회장은 지난해 1월 옥상에 올라 사계절을 지나고 다시 무더위가 두려운 여름이 다가왔지만 상황이 변한 것은 없다. 고용을 승계하라는 요구에 일본 모회사인 니토덴코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 부지회장은 새 대통령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법과 제도가 단단해지는 사회를 원합니다. 낮은 곳부터 살피는 대통령, 노동자가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합니다. ”
재생에너지 공공이 나서야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54)은 새 정부는 공공이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세계적인 흐름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며 “민간 기업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공이 에너지 전환의 키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도해야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룰 수 있다”며 “우리 모두의 것인 햇빛과 바람을 사유화하지 않고 석탄발전소 노동자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방향”이라고 했다.
의·정 갈등 해결이 시급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63)는 “의료체계가 마비된 지난 1년3개월 동안 환자들은 고통과 두려움에 눈물만 흘려야 했다”며 “새 대통령은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 야기된 최악의 의료사태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의·정 갈등 해결과 재발 방지책을 1순위로 제시해달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새 정부는 공공의료, 지역의사제, 필수의료 확충 등 왜곡된 의료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 도입 청사진부터 밝혀야 한다”며 “새 대통령이 환자와 장애인, 노인 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함께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정책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길

직장인 김도환씨(44)는 유권자이자 양육자 입장에서 이번에 유독 ‘사전투표 부정선거론’ 같은 극단적 주장이 횡행하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만든 테두리 안에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견해에 맞는 것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니, 이게 어찌 보면 파시즘인 것 같다”며 “서로를 위해 차이를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세계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새 대통령이 한국 사회 내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사심 없이 길을 열어주는 대통령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과 자주적 소통 기대

이번에 생애 첫 투표를 한 박지운 학생(18)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12·3 불법계엄을 겪으며 책으로만 보던 억압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닐지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직전 대통령은 국민과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다가 계엄 사태를 일으켰다”며 “새로운 대통령은 국민과 자주적으로 소통하고 국민에게 믿음을 보여주면 좋겠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모든 학교 구성원 보호를

14년차 초등학교 교사 서지섭씨(38)는 11년 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거나 최근 학교에서 생을 달리한 동료 교사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학교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부실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새 정부는 시민 누구든 구조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서씨는 새 대통령이 ‘갈라치기’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교에서 일하는 많은 교육공무직이 모두 행복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학교와 지역사회 나아가 대한민국이 서로 경쟁보단 화합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인의 꿈도 키워주는 사회

시니어 모델 겸 연기자로 활동하는 박종문씨(66)는 “나이를 이유로 꿈을 좇는 것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 좋겠다”며 “재교육을 받고,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희망만 있다면 노인 세대도 얼마든지 다시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광고업계에 종사하다가 60세에 평생의 꿈인 시니어 모델로 전직했다. 그는 “지금껏 노인 정책을 살펴보면 은퇴 후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며 “특정 나이만 지나면 사회의 뒤편으로 사라지라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노인 세대도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직업·창업 교육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훈·김찬호·최서은·오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