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기본사회

2025-06-04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복지정책 논의가 미진했고 복지공약도 빈약했다. 무상급식을 계기로 복지국가 바람이 분 이래 가장 복지 주제가 부각되지 않은 대선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복지공약 역시 그랬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복지정책의 방향은 ‘기본사회’로 집약된다. 대선 전날 페이스북에도 기본사회를 실현하겠다며 거듭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진짜’ 기본사회로 나아갈지 확신을 하기 어렵다. 이 목표 앞에 놓인 장벽들도 높지만 공약집 내용 자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기본사회를 “주거, 의료, 돌봄, 교육, 공공서비스 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모든 권리를 최대한 실현하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라고 설명한다. 이는 익숙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기본사회’를 내세운다면, 묵직한 의제 혹은 복지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획이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주창했던 기본소득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기본’ 개념만 포장으로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실제 공약집을 살펴보자. 우선 빈곤 공약은 “최후의 생활안전망을 강화하여 ‘빈곤층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보통 빈곤 제로는 상대적 빈곤선인 중위소득 50%까지 국가가 소득을 보장해 빈곤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공약집은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보장수준의 단계적 상향’이라고 방향만 말한다. 2022년 대선 공약에서 ‘상대적 빈곤선인 50%까지 보장수준 상향 검토’를 명시했던 것과 대비된다.

주거정책에서 진보성을 보여주는 핵심 기준인 공공임대주택도 “단계적으로 확대”를 제시할 뿐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정부 재정이 상당히 투입되기에 목표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대폭 약화된 부동산 세금을 그대로 둔다. 공시가격 동결, 공정시장가액비율 하향,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액 확대, 세율 인하 등 집 있는 사람, 고가의 집을 가진 이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4종 종합세트 감세를 유지한다.

보건의료에서 절박한 과제가 간병이다. 초고령사회에서 많은 가족이 간병돌봄으로 힘겨워하고 극단적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이 포괄하는 통합간호간병서비스는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 병상 수의 10%에 그치는데, 공약집은 이것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와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원칙만 적었다. 선관위 방송 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간병비 재정 방안을 묻자 답변 역시 “의료재정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확대해 가겠다였다. 이러면 국민건강보험의 다른 지출도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간병 급여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연금개혁은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 두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다. 공약은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 그리고 “국민연금 재정 우려 해소를 위한 중장기 방안 마련” 수준에 머문다. 노인빈곤율이 40%에 이를 만큼 노후소득 보장이 부족하고 청년들이 나중에 받을 수 있을까 불안해하는데도 ‘어떻게’를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불합리한 연금제도 개선” 취지로 구체적으로 제안한 “기초연금 부부감액 단계적 축소”, “일하는 노인에 대한 국민연금 감액 개선”조차 적절한 정책인지 의문이다. 부부감액은 단독가구와 비교해 공동생활비 지출을 감안한 항목으로 외국에서도 있는 경우가 많다. 소득활동 감액은 국민연금 수급자 중 실제 월 소득이 411만원 넘는, 최상위 2.3%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국민연금 가입 시기에 혜택이 많았고 은퇴 이후에도 상당한 소득이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제도를 굳이 바꾸어야 할까.

복지재정 공약은 더욱 심각하다. 이 대통령은 복지국가가 부상한 2012년 선거 이래 처음으로 증세 공약이 없는 민주당 대선 후보이다. 예전이라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호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국토보유세까지 주창할 정도로 강력한 증세론자였던 정치인의 대변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내총생산(GDP)의 22.1%까지 올랐던 조세부담률이 2024년에 17.7%로 낮아졌고, 중앙정부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무려 105조원에 이른다. 앞으로도 막대한 국가재정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변신은 실용일까, 후퇴일까.

진짜 대한민국! 이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다. 인수위원회 없는 조기 대선 정부여서 곧 공약을 국정과제로 재정립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진짜 대한민국 꿈을 가슴에 품고 투표장에 갔던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진짜 기본사회로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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