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에 걸리면 재산은 누가 관리할지,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상속 다툼은 없을지 등 돈과 관련한 고민은 특히 복잡하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신탁’이다. 신탁은 한자로 ‘믿을 신(信)’ 자와 ‘부탁할 탁(託)’ 자를 써 말 그대로 믿을 만한 금융기관에 재산을 맡기고 필요할 때 자녀나 지정한 수익자에게 전달하는 제도다. 신탁에 대해서 알아본다.
신탁은 자신의 자산을 금융기관에 맡기고 운용·배분을 일임하는 것이다. 현금·부동산·증권은 물론 지식재산권까지 맡길 수 있어 활용 범위가 넓다. 단, 논밭과 과수원 같은 농지는 ‘농지법’상 금융사에 신탁할 수 없다.
신탁에는 위탁자·수탁자·수익자가 존재한다. 위탁자는 재산을 맡기는 고객이고,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관리·운용·처분하는 금융사다. 수익자는 신탁재산의 원본(원금) 또는 이익을 수령하는 자로 본인이나 자녀 등 고객이 지정한 제3자가 될 수 있다.
신탁에서 금융사는 신탁재산을 운용하고 신탁계약에 따라 운용 결과 그대로 수익자에게 지급한다. 다만 신탁계약은 실적 배당으로 원본의 일부 또는 전부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손실은 수익자에게 귀속된다. 신탁계약은 ‘예금자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기에 계약 전 충분히 상담해야 한다.
최근 주목받는 상품은 ‘유언대용신탁’이다. 사망 전 신탁계약을 통해 상속을 미리 설계할 수 있어 유언장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에게 재산을 남긴 뒤 아내가 사망한 후에는 이를 자녀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수익자를 순차 지정할 수도 있다. 재산을 한꺼번에 주는 대신 여러 차례 나눠 주거나 특정 시점까지 처분하지 못하도록 설정하는 등 안전장치도 걸 수 있다.
5대 시중은행(NH농협·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지난해말 기준 3조5400억원으로 2020년말 8800억원에서 4배로 성장했다. 그동안 고액 자산가만 신탁에 가입한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원으로 가입 문턱이 낮아진 점도 한몫했다.
농협은행도 최근 신탁상품 수요에 발맞춰 ‘NH 사랑THE 종합유언대용신탁’을 새로 단장해 출시했다. 유언장 작성과 공증 등 복잡한 상속 절차 없이 안정적인 재산 승계가 가능하다. 신탁계약을 통해 고객이 금전·부동산·유가증권 등의 자산을 생전에는 본인을 수익자로, 사후에는 지정한 수익자로 승계할 수 있다. 병원비나 생활비 등 긴급 자금이 필요하다면 중도 인출도 가능하다. 또한 상품 가입 최소 금액을 기존 3억원 이상에서 금전 외 신탁재산 합산 1억원, 금전인 경우 5000만원 이상으로 문턱을 낮췄다.
최근 치매인구가 급증하면서 ‘치매 신탁’도 주목받고 있다. 치매 신탁은 건강할 때 재산을 운용해주다가 치매가 발생하면 병원·간병·생활비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치매로 판단력이 흐려져 사기를 당하거나 금융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신탁도 금융상품이기에 통상 금융사에 1% 내외의 수탁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상품과 위탁 자산규모에 따라 수탁 보수가 달라지기에 가입 전 영업점 대면 상담은 필수다. 최근 금융사들은 법·금융·세무·부동산 전문가 면담을 통해 고객에게 알맞은 상품을 컨설팅하고 있다. 또한 가입자는 인지선별검사지나 후견인부존재증명서 등으로 자신의 의사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류현주 기자 ryuryu@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