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풍경] 걸어 걸어가다 보면

2025-01-03

날이 밝았습니다. 해가 떴습니다. 어제 그날이 아니고, 어제 그 해가 아닙니다. 묵은 날이 아니고 새날인 것은, 어제 떴던 해가 아니라 새로운 해인 것은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내가 되려는 마음입니다. 남보다 먼저 새날을 맞으려는 사람들 정동진으로 호미곶으로 달려갔지요. 남보다 먼저 새로운 해를 보려는 사람들 모악산에 국사봉에 올랐지요.

바다는 멀어서 못 가고 산은 높아서 못 올랐습니다. 핑계가 많은 나,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지평선에 섭니다. 들판 끝으로 거북이걸음을 뗍니다. 끝 간데없는 들판이 하늘과 맞닿아 있네요. 우보만리(牛步萬里)라던가요.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끝에 닿을 것입니다. 남들처럼 내달리지는 못해도 멈추지 않으렵니다. 만 리도 끝이 있을 겁니다. 고단한 어깨를 기대는 듯 사람 人 자 쓰며 기러기 떼가 남으로 가네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지요. 앞서 치고 나간 토끼가 언덕 위에서 낮잠을 자지 않더라도, 어서 와 손 내밀지 않더라도 걸어가야만 할 이유입니다. 걸어 걸어가다 보면 지금 저 황량한 보리밭에도 푸르름이 번질 것입니다. 금세 종달새 높이 떠 봄노래 부를 것입니다. 한여름 땡볕을 견디면 서늘한 바람 불어올 겁니다. 신발 몇 켤레 더 장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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