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127억원. 2024년 5372억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민으로부터 받은 돈이다. 2023년 배당금으로 송금받았다가 국부유출 비판이 일자 2024년에는 자사주 매각방식을 택했다. 5372억원은 배민 영업이익의 84%였다. 송금의 비결은 구조조정이다. 자영업자는 쥐어짜고 라이더 배달료는 삭감했으며 노동력은 외주화했다.
2023년과 2024년 사이 배민 본사 직원의 숫자와 인건비는 제자리였는데 외주용역비는 1.7배 증가했다. 배달을 대신해줄 하청업체 사장들을 모집해 배달도 외주화했다. 플랫폼기업은 플랫폼노동이 아니라 모든 저렴한 노동을 사랑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민의 공장까지 구조조정하려 한다. 배민 앱 ‘브로스’를 없애고 딜리버리히어로의 앱인 ‘로드러너’를 도입할 계획이다. 배민이 로드러너를 사용하려면 수천억원의 이용료를 딜리버리히어로에 납부해야 한다. 독일 본사에 더 많은 돈을 송금할 명분도 챙기고, 배민 앱을 만들고 관리하던 개발자들을 구조조정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플랫폼이 앱을 교체하는 것은 플랫폼노동자의 일터를 바꾸는 일이다. 현실의 공장을 폐쇄하고 새로 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디지털 공장은 하루아침에 철거하고 세울 수 있다.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게임을 출시하기 전 데모버전을 돌리는 것처럼 일단 앱을 깔게 하고 오류를 수정하면 된다. 실제 배민은 4월부터 경기 화성시 오산 지역에 로드러너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라이더와 자영업자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다. 앱 오류는 앱에 접속해 일하는 사람의 삶을 무너트린다.
라이더유니온이 로드러너 경험이 있는 라이더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77.8%가 배달료 정산 오류를 경험했고, 96.3%는 지도가 부정확하다고 답변했다. 앱이 9000원을 준다고 해서 배달했는데 실제로는 4000원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도 다르지 않다. 자영업자들이 설정한 배달 가능거리를 로드러너가 임의로 줄인다. 거리제한을 하면 손님이 사용하는 배민앱에는 가게가 준비 중이라고 뜬다. 건물주가 가게 문에 ‘영업 안 함’이라고 써 붙인 꼴이다.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사장협회’는 로드러너가 시범 도입된 세 가게를 선정해 4월 매출을 분석했는데 각각 -24.4%, -28.9%, -14.6%를 기록했다. 배민공장을 만드는 개발자들도 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우아한형제들지회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6%가 로드러너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11월25일 배민라이더, 자영업자, 개발자가 연대해 ‘로드러너’ 도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다. 라이더와 자영업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앱과 알고리즘을 개발한 노동자를 미워했을지 모른다. 자영업자는 음식을 늦게 배달하거나 불친절한 라이더에게, 라이더는 음식을 늦게 만들거나 불친절한 자영업자에게 분노했다. 정작 노동자들을 활용해 이윤을 얻는 플랫폼기업은 이 싸움에서 빠져 있었다. 플랫폼에 접속해 서로 싸우던 노동자들이 난장판을 만든 진짜 책임자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연대의 손을 잡는다. 각자도생의 플랫폼에서 로그아웃해 상생과 연대의 플랫폼에 로그인하는 역사적 투쟁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