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보내려면 네 가지 조건이 있다

2024-12-2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럿이 술을 마시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단둘이 술 마시니 시간이 더디게 간다. 김 교수는 평소에 궁금했던 술집 아가씨들의 세계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술을 매일 마시다 보면 몸이 견디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러한 폭음을 견디느냐고? 그들 세계에는 나름대로 술 적게 마시는 비법이 있단다. 술잔을 받았다가 안 볼 때에 다른 그릇에 슬쩍 따르기도 하고, 술을 마신 후 입에 머금고서는 물잔을 들어서 마시는 척하면서 뱉는 방법도 있고. 손님들이 취한 이후에는 남이 얼마나 마시는지 볼 겨를이 없으니까 쉽게 속일 수가 있단다.

내친김에, 손님이 여관에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았다. 그 말을 물으면서 아가씨를 바라보니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이 약간은 뜨악한 표정이다. 술을 한 잔 마시더니 아가씨는 솔직히 털어 놓았다. 자기는 속된 말로 몸을 팔기도 한단다. 돈이 필요할 때 2차 가자는 손님이 있으면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되묻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느낌으로 싫은 남자하고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남자를 따라가면 몸은 그 남자에게 맡기고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단다. 때로는 옛날 시골에서 보았던 눈이 커다란 소를 생각하기도 하고, 바다에 떠 있는 하얀 배를 생각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연꽃을 생각하기도 하단다. 그 일을 즐거워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괜히 흥분한 척하여 빨리 일을 끝낸다고 한다. 김 교수는 아가씨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내가 쓸데없는 것을 물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갑자기 아가씨의 인생이 딱해 보였다. 잘 모르는 남자와, 마음은 따라주지 않고 몸만이 움직이는 가짜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가씨의 인생이 가련해 보였다. 원래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데. 사랑이란 잘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악수와는 다른 것. 사랑은 잘 아는 사람끼리 마음과 마음이 합쳐질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것. 진정한 사랑은 두 몸과 두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느낄 수 있는 지고한 행복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너처럼 예쁜 여자가 헛사랑을 나누면서 헛헛하게 세상을 살아가느냐?

김 교수는 갑자기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한 욕정을 느꼈다. 그는 아가씨를 일으켜 세우더니 낚아채듯이 껴안고서 맹렬하게 키스하였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그는 지극히 점잖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갑자기 난폭하게 껴안고 뜨거운 키스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남자의 혀가 여자의 입술 사이로 쳐들어갔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짜릿하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였다. 시간은 정지해 있었다. 아, 이 남자에게도 이러한 면이 있었네. 전혀 새로운 발견이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술 한 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그녀가 슬며시 몸을 기대면서 그의 목을 껴안고 다시 키스를 해왔다. 그 역시 거부하지 않고 그녀의 혀를 받아들였다.

두 번째 뜨거운 키스가 끝나자, 그녀는 슬그머니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서는 손을 집어넣어 그의 거시기를 꺼내었다. 성난 거북 머리 모양의 우람한 거시기가 은은한 불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씩씩한 거시기를 한번 바라보고서 바지의 지퍼를 올려 주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연극을 관람하듯이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만화 같은 단막극이 끝나고 미스 최가 말을 꺼냈다.

“오빠, 오늘 보니 진짜 남자네. 나는 오빠가 불구인 줄 알았어요.”

“그래 나도 남자다 요년아. 남자여서 불만 있니?” 김 교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오빠가 임포인 줄 알았지요. 오빠. 어쩌면 그렇게 나를 속여요?”

“내가 언제 너를 속였니?”

“나는 사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고.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터 오빠가 좋았어요. 그러니까 잠실에서 만났을 때 말이에요, 오빠.”

“지금은?”

“지금도 좋지요. 그러나 오빠는 별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 봐.”

“나도 너가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를 보면 슬픈 생각이 난다.”

“오빠, 뭐가 슬퍼요?”

“너의 얼굴을 바라보면 즐겁지만, 너의 인생을 생각하면 슬프구나.”

“오빠, 슬픈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지금은 기쁜 시간이잖아요.”

“그러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쨍 한번 하자”

두 사람은 술잔을 다시 부딪쳤다. 김 교수는 그녀가 자기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군더더기이다. 말이 필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표정만 보아도 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어찌할 것인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나?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회피하지 않고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가씨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자리에서 아가씨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세상사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외도, 이혼, 망신, 사직, 후회, 비참, 아들 등의 단어가 머릿속에서 오갔다. 돈, 임신, 협박, 소송, 살인 등의 단어도 떠올랐다. 아, 어려운 선택이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 한 사람이 선택한 행동의 1년 치 결과라도 미리 알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여자 문제에 관해서 말이다. 김 교수가 겪고 있는 치열한 내면의 갈등은 모른 채 아가씨는 조잘대며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가씨가 상체를 기대면서 김 교수의 귀에 뜨거운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오빠, 오늘 밤 나 오빠하고 같이 지내고 싶어.”

“얘가 대담하네. 싫다 요년아.”

“오빠는 내가 싫어?”

“네가 좋지만 너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왜?”

“내가 그렇게 헤픈 남자는 아니다. 나하고 하룻밤을 보내려면 네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게 무어야, 오빠. 말해 봐.”

“첫째, 서울에서는 싫다.”

“좋아요.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한 번 같이 가요. 오빠.”

“둘째, 호텔에서는 싫다.”

“좋아요. 그럼 민박집에서 자면 되겠네. 오빠.”

“셋째, 돈 주고는 싫다.”

“그래요, 오빠. 가난한 교수님더러 돈 달라고 안 할게요.”

“마지막으로 넷째, 보름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이불을 덮기 직전에 보름달을 꼭 보아야 한다. 구름이 끼면 무효다.”

“무어라고요? 오빠, 정말 대단한 남자네. 보름달을 보아야 한다고요? 그래요, 좋아요. 오빠가 좋으니까 기다리지요 뭐. 보름달 뜨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요. 좋은 사람 열 번인들 못 기다리겠어요?”

김 교수는 아가씨를 살짝 껴안으면서 귀에 대고 말했다.

“예쁜 아가씨, 고마워. 그러나 이 세상에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단다.”

아가씨를 마지막으로 만나기 며칠 전에 김 교수는 우연히 《배비장전》이라는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을 읽었다. 《배비장전》에는 발령받고 새로운 임지로 떠나는 제주목사를 따라 육지로 떠나는 정 비장(裨將: 조선 시대 무관 관직의 하나)이 그동안 사귀어 온 제주 기생 애랑과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정 비장은 애랑이 이별을 서러워 하자 다음과 같은 선물을 준다.

중량 한 통, 세량 한 통, 탕건 한 죽, 우황 열 근, 인삼 열근, 월자 서른 단, 마미 백 근, 장피 마흔 장, 녹비 스무 장, 홍합.전복.해삼 백 개, 문어 열 개, 삼치 서 뭇, 석어 한 동, 대하 한 동, 장곽.소곽.다시마 한 동, 유자ㆍ백자ㆍ석류ㆍ비자ㆍ청비ㆍ진피ㆍ용ㆍ얼레ㆍ화류, 살쩍, 삼층난간 용봉장, 이층 문갑, 가께수리경대, 산유자 궤ㆍ뒤주 각 여섯 개, 걸음 좋은 제마 두 필, 총마 세 필, 안장 두 켤레, 백목 한 통, 세포 세 필, 모시 다섯 필, 명주 세 필, 간지 열 축, 부채 열 병, 간필 한 동, 초필 한 동, 연적 열 개, 설대 열 개, 쌍수복 백통대 한 켤레, 서랍 하나, 남초 열 근, 생청 한 되, 숙청 한 되, 생률 한 되, 마늘 한 접, 생강 한 되, 나미 열 섬, 황육 열 근, 호초 한 되, 아그배 한 접.

그러나 애랑은 이에 멈추지 않고 온갖 애교로 정 비장의 갖두루마기와 돈피 휘양과 철병도와 바지저고리와 적삼을 얻어내더니 앞니를 하나 빼어 달랜다. 마지막으로 애랑은 양각산중주장군(兩脚山中朱將軍: 두 다리 사이의 붉은 장군으로서 남자의 성기를 말함)을 반만 잘라 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고 예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성불구자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 남자는 두 사람 빼고는 다 넘어갈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일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영어 속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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