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005930)가 사내 생성형 인공지능(AI) 개발·활용 방안으로 ‘하이브리드 AI’ 전략을 꺼내 들었다. 자체 개발한 AI ‘가우스’와 외부 오픈소스 AI를 동시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사내 생성형 AI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정보 유출 우려는 차단하면서 임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은 극대화하는 실리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28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사장)이 최근 임직원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사내 생성형 AI를 지향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행은 최근 DX부문장 취임 후 첫 타운홀미팅을 열었는데 한 직원이 ‘(챗GPT 등) 외부 AI의 사내 접속을 허용해줄 수 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삼성전자는 자체 AI 모델인 가우스 성능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외부 오픈소스 AI 등 검증된 솔루션을 함께 사용해 사내 생성형 AI를 구축하고 있다.
가우스 성능 현황과 추가 AI 모델 출시 계획도 공유했다. 노 대행은 “(최근 사내 공개된) 가우스O(알파벳 O·최신 버전)은 자체 평가 결과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면서 “이달 안에 고속·고효율 추론 모델도 추가 공개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사내 생성형 AI모델인 가우스2를 공개했다. 이후에도 가우스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외부 오픈소스 AI 등 검증된 솔루션도 적극 활용하며 사내 생성형 AI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가 사내 생성형 AI 개발에 하이브리드 전략을 꺼내든 건 생산성 향상과 보안이라는 두 토끼를 잡기 위한 현실적 해법이란 분석이다. 내부 민감 정보나 핵심 코딩 작업을 사내 AI 데이터센터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보안을 지키고, 가우스를 고도화하는 한편 외부 오픈소스 AI도 적극 도입해 업무 효율을 높이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2023년 직원이 오픈AI의 챗GPT에 사내 기밀 소스 코드를 입력하며 민감한 정보가 오픈AI 측 클라우드로 전송돼 데이터 보안 이슈가 불거졌다.
삼성전자의 이번 선택을 두고 AI 경쟁의 본질이 ‘누가 가장 뛰어난 범용 AI를 가졌는가’에서 ‘누가 AI를 가장 잘 활용해 사업을 혁신하는가’로 전환하는 시점에 후자를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진짜 AI 전쟁터는 더 이상 언어모델 성능 순위표가 아니라, 기업의 연구개발(R&D) 실험실, 반도체 팹(fab), 마케팅 부서 등 업무 현장 그 자체가 되고 있다” 면서 “소프트웨어 코드 한 줄을 더 빨리 짜고, 반도체 수율을 0.1% 더 높이고, 신소재 개발 기간을 한 달이라도 단축시키는 것이 AI 도입의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를 전방위적으로 도입 중이다.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는 최근 AI 에이전트 태스크포스(TF) 인력 충원을 마치고 활동을 개시했다. 반도체 설계에 특화한 AI로 기술적 난제 해결, 제조 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한다.
DX부문에서는 5월 AI 기반 업무 혁신을 위해 AI 생산성 혁신그룹을 신설했다. AI 기술을 삼성전자 제품에 도입하는 차원을 넘어 사내 업무 전반에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DX부문은 이달 AI 신사업 추진을 전담하는 이노X 랩(InnoX Lab) 신설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전사 차원에서 선발된 인재들이 AI를 통해 △디지털 트윈 설루션 적용과 확산 △물류 AI 적용을 통한 물류 운영 모델 혁신 △피지컬 AI 기술을 활용한 제조 자동화 추진 △휴머노이드 로봇 핵심 기술 개발 등 고난도 핵심 과제에 대응 중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삼성전자의 하이브리드형 사내 생성 AI는 빅테크의 범용 모델과 달리 특정 기업과 산업에 특화한 버티컬(Vertical) 모델이다”며 “삼성전자 고유의 제조 데이터와 업무 DNA에 맞춰 생산성 극대화를 이뤄낼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